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8월 1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11 조회수 : 895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어느 책에서 다음과 같은 아주 인상적인 글을 쓰셨습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이 문장에서 커다란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것에서 계속 감탄하는 사랑은 행복의 시간이 길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커다란 행복만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말하며, 이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하고, 내 가족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남부끄럽지 않게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쫓아가는 사람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 전부는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의 빈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행복을 자주 느끼고, 또 행복감을 길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엄청난 성취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엄청난 성취는 순간의 만족에 그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상도 내 행복을 위해 필요한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귀한 시간입니다.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것은 일상의 모든 것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크고 대단한 일회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용서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에는 동태복수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즉,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아라.’라는 법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수가 아닌 용서하라는 새로운 윤리적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유다인들도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여 남을 용서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는 4번을 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새 나라의 새 법에서 몇 번까지 용서해주어야 하는지를 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곱 번을 생각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기대와 달리,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용서에는 한도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빚진 것을 처리하는 한 왕의 처사를 하늘 나라에서 죄를 용서하는 하느님과 비교 설명하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커다란 용서를 통해 하느님의 뜻대로 행동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용서에는 한도가 없기에, 계속된 용서를 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만이 하느님의 용서 역시 계속해서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인 것처럼, 우리가 용서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면서 행복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오늘도 주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