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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22 조회수 : 760

우연히 어느 지역에 갔다가 오래된 식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식당이 어떤 곳인지 곧바로 기억났습니다. 30년 전 신학생 때, 본당 신부님께서 데리고 갔던 중식당이었습니다. 너무 고급스럽고 가격도 비싸서 그 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식당이지만, 너무 맛있었기에 그 맛을 잊지 못했던 곳입니다. 그 옛날을 떠올리며 비록 혼자였지만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옛날 그 자리에 계속 운영 중인 식당이었지만,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는지 이제는 너무 낡고 옛날 풍의 느낌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비싼 가격이 아니라, 이제 보통 가격 수준이더군요.

그렇다면 맛은 어떠했을까요? 옛날 그 맛이 아닌, 평범했습니다. 아마 그때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는 때였고, 그래서 보통 맛보다 더 뛰어난 맛이었기에 최고의 맛으로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을 기억하게 해주는 고마운 장소라서 다시 찾아올 것 같습니다.

문득 시간이 지나도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해 봅니다. 변함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계속 바뀌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점은 계속 좋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을 흠뻑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불행 선언’을 하십니다. 눈먼 인도자라고 하시면서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을 꾸짖습니다. 사실 율법의 세부 조항까지 철저하게 지키는 그들의 삶은 그 어떤 사람도 따라 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런 열정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행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남들을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으며, 자기들은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면서 그 안에서 자유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기만을 사랑하는 아주 이기적인 위선자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이러한 ‘불행 선언’을 듣고서 좋아했을까요? ‘맞다. 우리가 이렇게 이기적인 위선자였구나.’라면서 회개해서 다시 하느님 뜻에 맞는 생활을 바꿨을까요?

예수님도 그들이 변화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변화되지 않았기에 자신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끈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기적인 위선에서 벗어나, 처음에 주님을 통해 얻었던 열정과 사랑을 계속해서 실천할 것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첫 마음을 잃지 말고 우리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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