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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1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2-09-11 조회수 : 353

연중 제24주일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말씀]

1독서(탈출 32,7-11.13-14)

하느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내리신 시나이산 계시 이야기는 모든 우상, 안전을 보장해주리라 믿으며 사람들이 상상의 세계에서 만들어낸 우상들에 대한 단절을 기본으로 한다. 이스라엘이 수송아지 모양으로 하느님의 형상 제작을 시도했을 때 죽음의 위협은 마땅한 결과였으나, 신앙의 선조들에게 다짐하신 약속을 근거로 모세가 청을 올림으로써 하느님은 내리시겠다던 재앙을 거두신다. 아직은 진노의 하느님 모습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2독서(1티모 1,12-17)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실존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던 체험, 곧 기적적인 회심 사건을 깊이 있게 묵상하여 여러 차례 전해 준 바 있으며, 그 한 예를 오늘 독서에서 만난다. 바오로는 본디 의법주의자로서 자신의 의로움을 과신한 나머지, 다른 유다인들처럼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하던 사람이었으나,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조건 없이 거저 주어지는 것임을 터득한 순간, 스스로 죄인임을 인지함과 아울러 복음 전파자로서의 사명에 앞장 선다.

복음(루카 15,1-32)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이름으로 세리와 죄인들을 단죄함은 물론, 이들과 음식을 나누고 계신 그리스도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품고 있던 하느님의 모습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몇 가지 비유를 들어 적시하신다. 그분은 죄인에게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고자 탕자에게 이르기까지 거저 사랑을 베푸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 용서를 기쁨으로 여기시는 자비의 하느님이다.

[새김]

아무런 조건 없이 선택된 이스라엘이 저질렀던, 그것도 수없이 되풀이했던 가장 큰 죄악은 하느님께 대한 배반을 의미하는 우상숭배였다. 이방 민족의 신을 섬기거나 신상을 만드는 좁은 의미에서의 우상숭배도 문제였지만,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는 율법을 어기거나 그분께 의지하기를 포기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는 모든 행위 역시 넓은 의미의 우상숭배였다. 선택의 역사 이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과 생명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 바탕에는 그때마다 되풀이되는 하느님의 용서가 있었으며,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용서하는 삶을 익히고 실천에 옮겨야만 했다.

그러나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지 못함에서 비롯된 속단과 단죄의 역사는 그칠 줄 몰랐다. 늘 죄인 취급받았던 세리들로부터 시작해서 죄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셨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바로 이들을 단죄하고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바리사이파의 일원이던 바오로의 회심와 개종은 신약의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그 용서의 힘이 바오로로 하여금 열정적인 선교의 길로 나서게 했음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자비를 배워 실천하고, 자비의 은총 속에 있는 사람답게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원하시는 하느님을 온몸으로 알리는 사도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

 

교우 여러분, 하느님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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