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말씀
[말씀]
■ 제1독서(2열왕 5,14-17)
구약 전승은 기원전 9세기의 대표적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에 관한 수많은 이적 기사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시리아의 사령관 나아만의 치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하느님 야훼께 대한 경신례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절, 나병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나아만이라는 이방인이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함과 아울러 감사의 예를 올리고자 한다. 구원은 이제 이스라엘을 벗어나 이방인들을 향한다.
■ 제2독서(2티모 2,8-13)
사도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바오로는 수많은 적대자와 논쟁을 벌여야 했으며, 때로는 그들에 의해 감옥에 갇히는 고통도 감수해야 했다. 적대자들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대상은 유다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 전파와 구원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식을 보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누구도 하느님의 말씀을 가두어놓을 수 없다는 확신 하에 갖은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데 앞장선다.
■ 복음(루카 17,11-19)
나병에서 치유된 사람은 열 사람이었으나, 치유가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율법에 따라 사제에게 깨끗해진 몸을 보이고 치유를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했던 유다인들과는 달리, 이방인으로 취급되던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되돌아온다. 그리스도는 율법만 준수하면 그만이라는 사고에 젖어 있던 유다인을 꾸짖으시면서,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할 줄 아는 믿음으로 영적인 나병까지 치유 받은 이방인을 신앙의 모범으로 내세우신다.
[새김]
■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선사 받고서, 다윗 시대를 이어 솔로몬 시대에 이 땅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계약의 궤를 모시기 위한 성전을 건축한 이래, 하느님은 어느 정도 성전 또는 이스라엘 땅에 매여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이며, 구원 또한 이 땅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이 싹터왔다. 이방인 지역은 하느님의 말씀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구원의 가능성이 배제되기 시작했으며, 이스라엘 땅과 이 땅에 사는 백성만이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구원관에 젖어 있었다. 이처럼 하느님의 자유는 인간의 잘못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제한받는 자유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연 그럴까?
■ 그러나 오늘 성경의 말씀들은 모두 이방인들의 구원에 관한 말씀, 오히려 그들이 구원에 더 가까이 다가서 있음을 일러주는 말씀들이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나 동족에 의해 이방인으로 취급되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러하다. 사도 바오로의 확신에 찬 가르침대로, 하느님의 말씀은 어느 장소 또는 어느 누구에게 매여 있는 말씀이 아니다. 유다인들처럼 가톨릭 신자라는 자긍심을 넘어 하느님의 말씀까지도 가두어놓을 수 있다는 교만 속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자. 우리 주위의 보다 많은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전달되고, 그들 모두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전교의 사명을 다할 때다.
교우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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