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잃은 사람들을 찾으시는 하느님
[말씀]
■ 제1독서(지혜 11,22-12,2)
기원전 1세기 지혜서의 저자는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돌이켜보는 가운데, 하느님은 심판하고 단죄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백성을 가르치시며 회개를 기다리시는 인내의 하느님이심을 확인한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이 흔히 악한 사람들로 취급했던,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려 했던 이집트인들을 포함한 모든 이방인도 회개하면 언제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활짝 열린다. 이렇게 하느님의 영광은 당신 사랑과 인내를 바탕으로 드러난다.
■ 제2독서(2테살 1,11-2,2)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 하는 왜곡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이성을 잃고 혼란 속에 허덕이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도 바오로는 기다림의 시기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한다. 주님의 성령께서 인류에게 새로운 영을 불어넣으시고 그를 영적인 존재로 변화시키시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이 즉각 구분되어 선한 사람들만을 주축으로 세워질 갑작스러운 새로운 왕국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인간성을 회복함으로써 보다 넓은 구원의 새 세상이 건설되기를 기대하며 기다리시는 분이다.
■ 복음(루카 19,1-10)
주님을 뵙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세관장 자캐오는, 철저한 율법준수로 스스로를 깨끗하고 경건한 사람들이라 믿었던 유다인들,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 자처하던 유다인들에 의해서 멸시를 받아왔던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마다하신 채 자캐오의 집에 머물고자 하신다. 주님의 사랑 가득한 행보에 감탄한 나머지 자캐오는 모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주님의 자비와 용서로 열릴 새 세상의 일원이 되는 은총 앞에 우뚝 선다.
[새김]
■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관은 지나칠 정도로 배타적이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거저 주어진 은총의 결과로 보지 못하고서 선민의식만을 내세워, 구원 또한 하느님의 백성인 자신들에게만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곧 선택되었다는 사실에만 집착한 나머지 선택이라는 은총이 어떤 사명을 부여하고 요구하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모른 체한 결과였다. 이스라엘은 마땅히 선택된 백성답게 모든 민족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증거자로 적극 나서야 했음에도 말이다.
■ 신앙의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 우리 역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례성사를 통한 선택에 만족한 나머지 가톨릭 신자로서의 사명에 소홀한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볼 때다. ‘우리’라는 표현을 폐쇄적인 울타리 ‘우리’로 잘못 인식하여, 이웃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한 적은 없었는지 그 또한 점검해 볼 때다. 주님은 만민에게 자비로우신 분이며(제1독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원을 약속하시는 분이기에(복음), 우리는 더욱더 주님의 부르심에 적합한 구원의 증거자로서의 삶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제2독서).
교우 여러분, 주님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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