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의 중심 주제는 산상설교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중에서도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이다. 두 독서가 함께 이 행복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복음은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스바니야는 주님께서 오실 날, 가난하고 순박한 정신으로 그분께 나오는 모든 이에게 마지막 날에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라고 한다. 가난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판단에 신뢰심을 갖고 자신을 내맡기는 하느님 안에서의 완전한 자기 포기를 말한다. 이러한 가난은 회피해야 할 저주스러운 것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높은 목표이다. 이 가난이라는 것은 항상 정의 즉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의무와 결합하여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은 살아남게 되고,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스바 3,12) 또한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과 사기를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스바 3,13).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과 겸손하다는 것은 일치한다. 이 개념을 통해 예언자들은 메시아를 예고한다(참조: 즈카 9,9).
복음: 마태 5,1-12: 산상 설교.
오늘 복음의 참 행복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고도 극적인 삶으로 사신 것들이다. 이 가르침 하나하나를 그분의 삶을 통해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산상설교는 모든 윤리 규범을 초월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정상적 지혜가 부서지고 만다. 그 지혜는 하느님 앞에서 어리석은 것, 즉 우리 자신이 회개할 때만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산상설교의 메시지는 회개에 대한 권고(마태 4,17 참조)를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셔서(1절), 산 위에서 법을 가르치는 새 모세처럼 군중들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바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참조: 1코린 3,3)에 새겨진 그리스도인의 새 법으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 산상설교는 가난해서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가난해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고, 박해를 받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위해 박해를 받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10절).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모두 회개하여 이루어야 할 최상의 목표라고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3절). 예루살렘 성경은 이 구절을 가난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로 훌륭히 번역하고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은 스바니야서의 가난의 영적인 차원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가난의 덕이라는 것은 비록 우연히 소유하였을지라도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한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지적인 능력, 사고, 계획, 우리의 성성까지도 포함하여 우리가 선익을 위해 소유할 수 있는 그 모든 것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하느님께 의탁함으로써 그분을 통해 자신을 무한히 부유하게 하고, 또 그분이 베풀어주시는 모든 선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가난하건 부유하건 상관없이 다른 모든 행복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첫 번째 행복의 정신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지는 집착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해방되어 있느냐, 그리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통해 부유해지고 그분께 받은 선물을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근본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시는 것, 이것이 인간의 오만과 자만심의 틀을 뒤엎으시는 하느님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세속적인 견지에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들을 하느님께서 불러주셨음을 상기시키면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6-27)라고 한다. 이것은 모든 선이 하늘로부터 오기 때문에 그 누구도 마치 자기 스스로 부유한 듯이 여겨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기에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1코린 1,31) 한다.
가난한 정신은 모든 행복의 근원이 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가난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빈부에 아무 관계 없이 가난하건 부유하건 모든 재물에서 집착을 버려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 앞에 올바른 회개를 통하여 그분으로 부유해지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그런 마음이다. 이러한 나눔을 통하여 자기만족이나,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즉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그분을 자랑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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