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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7-10 조회수 : 178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호세아 10,1-3.7-8.12         마태오 10,1-7 
 
남과 비교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 
 
 
남과 비교하며 살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남과 비교하면 힘들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분이 ‘비교’로 이행 시를 지었는데 이렇게 지었습니다. 
 
비: 비참해지거나,
교: 교만해지거나. 
 
내가 남과 비교하는 이유는 우월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열등감 때문에 우월해지려고 남과 비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은 사람은 어차피 비교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군가와 비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살아서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나 뉴에이지와 같은 쪽에서는 남과 비교하는 것조차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는 달리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라는 말과 같습니다. 
 
사실 스님들도 자신이 부처처럼 되기 위해 달리는 것이고 누가 더 앞서가는지 뒤처지는지 같은 길을 가는 다른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나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이니 좋은 징조입니다.
다만 방향은 좀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릴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부러운지 생각해보십시오.
둘 다 수천억의 자산가입니다. 
 
이탈리아의 ‘잔루카 바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수천억의 재산과 초호화 보트, 개인 제트 비행기, 수영장 딸린 저택은 기본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거의 할아버지인데도 미스 유니버스와 같은 젊은 최고의 미녀들을 바꾸어가며 삽니다.
그의 저택에는 잡지에나 나올법한 미녀들이 몇 명씩 함께 삽니다. 
 
그는 SNS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세계 많은 이들과 공유합니다.
부러움을 사기 위해 올리는 것입니다.
행복하다면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자신을 홍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자랑은 부족한 행복을 채우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리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추종자가 되어 그의 하루하루를 부러워하며 그의 부족한 행복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그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홍콩의 ‘주윤발’ 씨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자신의 재산 ‘8천억 원’을 전액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아내도 이에 동의하였습니다.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고 저렴한 식사를 하고 싸구려 시계와 옷을 입습니다.
건전하고 겸손한 생활의 대명사입니다. 
 
하느님께서 만약 두 사람의 인생 중 누구를 택하겠느냐고 물으시면 어떤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바키를 선택하시는 분들은 돈과 쾌락과 명예를 추구하시는 분이고, 주윤발 씨를 택하는 분은 그것보다는 하느님 뜻에 맞는 삶을 원하시는 분들입니다. 
 
결국,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단순한 그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도달하고 싶은 방향으로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입니다.
나의 달리는 방향을 바꾼다면 이전에 부러워하던 사람들은 마치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사람처럼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뽑으십니다.
열두 사도를 뽑아 파견하신다는 말은 ‘소명’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소명은 삶의 방향이고 인생의 목적지입니다.
주님께서 목적지를 지정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목적지가 삶의 이유이고 행복임을 믿는다면 이제 그들은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과 함께 달리는 동료들이 있을 뿐입니다.
소명은 그 사람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소명대로 사는 사람의 경쟁자는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소명을 받은 이들은 주님께서 정하신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할 것만을 걱정하여 남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비교 대상은 나 자신이고 나의 주위에서 달리고 있는 이들은 또한 내 협조자들이고 나의 위로자들이고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대상들입니다. 
 
정리하자면, 우선 비교 대상이 없는 사람이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비교하지 않고 사는 것은 무기력에 빠지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제자리 뛰기를 하는 사람보다 목적지를 향해 눈이라도 돌리는 사람이 더 활기차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며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거나 합니다.
비참해져도, 교만해져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소명을 깨달은 사람은 누구도 부러워함 없이 함께 뛰는 사람들을 발전의 기회로 삼습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주님의 소명을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의 진정한 비교 대상은 ‘어제의 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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