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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교구[보도3] 이용훈 주교 삶과 신앙-평화신문 (3.30일자)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03-03-27 조회수 : 1164
행사일 :

이용훈 주교 삶과 신앙

 

겸손과 추진력 갖춘 사제 생활의 모범

 “사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삶, 그 자체로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20일 수원 정자동 교구청 회의실에서 있은 이용훈 신임 보좌주교 인터뷰 도중 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말한 ‘우리 보좌주교님 자랑’이다. 신임 이용훈 원교구 보좌주교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제 생활의 모델이자 표준>이라고 평한다.

이 주교의 일상 삶을 들여다보면 이런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본인은 알지 모르지만 이 주교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늘 두 손을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길을 걸을 때도, 강의를 할 때도,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항상 같은 자세다.

사람들은 이 주교의 이런 습관을 두고 <겸손>을 이야기한다. 20여년 가까이 후학을 양성하며 갈고 닦은 영성의 결과가 자연스레 몸에 밴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교에겐 <고집>도 있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철저한 기도생활, 기도 중에 한번 결심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 대충대충을 거부하는 학문적 열정…. 때론 무기력해질 수 있는 오랜 신학교 교수신부 생활 속에서도 항상 생동감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원동력도 이런 여러가지 <고집>에서 기인하다.

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이 주교는 1951년 9월 농사일을 하던 부친 이광래(프란치스코, 84, 수원 원천동본당), 모친 김진복(아녜스, 84)씨의 4남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차분한 성격의 이 주교는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 재학시절과 대신학교(가톨릭대 신학대학)를 거치면서 학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동생 이용필(토마스 아퀴나스, 44)씨는 “이 주교님은 어릴 때부터 한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해내고야 말았을 정도로 집중력과 끈기가 강했다”고 회고했다. 이 주교의 오랜 벗인 윤민구 (분당 야탑동성마르코본당 주임) 신부는 “신학교에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성격은 주위 사람들에게 강한 신뢰심을 심어준다. 이 주교의 동창인 대전가톨릭대총장  유흥식 신부는 20일 이 주교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평소 네가 해 오던 대로만 한다면 훌륭한 목자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적었다.

이 주교에 대해 <공부벌레>로 아는 이들이 많다. 사실 이 주교는 고등학교 시절 이후 책에서 손을 놓은 일이 거의 없었다. 윤리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1979년부터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1984년 교황청 라테라노 대학 성 알폰소 대학원에 입학할 때까지의 공백기간에도 그는 안법고등학교 및 성신고등학교 교사, 그리고 수원대와 수원과학대 전임강사를 지냈다. 대학 총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지난해에도 미국 하버드대로 연수를 떠났다.

하지만 이 주교는 단순한 <공부 모범생> 이상으로 ‘실천하는 행동가’였다. 사제품을 받을 때 “마음과 눈과 귀를 열어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뜻을 세운 이 주교다.  학문의 방향을 ‘윤리신학’으로 정한 것도 이 주교의 이런 성품을 반영하고 있다.

이 주교는 학문과 사회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사제직에 대한 열정도 소문나 있다. 후배 사제 양성에 대한 열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988년 9월 신학박사학위 취득 후 15년 동안 신학교에 몸을 담고 신학생들 지도하면서 이 주교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사제 양성의  못자리인 신학교는 교구의 미래가 달린 곳.

이 주교는 때론 엄격하게 때론 등을 도닥거려 주며 신학생들에게 올바른 사제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강의 시간에는 신학생들과 농담을 즐길 정도로 자상한 선배의 모습도 잃지 않았다.

이 주교는 신학교 재직시절, 늘 <신학생다운 신학생> <사제다운 사제>를 강조했다. 주어진 위치에서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 이것이 이 주교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리고 이 방식을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