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2025년 추계 정기총회
주한 교황대사 말씀
(2025년 10월 14일)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추계 정기총회를 맞아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고 기쁩니다. 저에게 인사말을 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 주한 교황 대사관의 새로운 협력자 조반니 비키에리 몬시뇰을 여러분께 소개하게 되어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주교님 한 분 한 분께 저의 따뜻한 인사를 전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믿는 가운데 희망을 잃지 않고 한국 가톨릭교회를 위해 열정과 헌신으로 애써 오신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지금, 세상과 교회 모두가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기에 추계 정기총회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4월,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위해 삶을 바치신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지금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은 세상을 떠나 주님 곁으로 가신 우리 한국 주교님들의 모습과 함께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몇 주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베드로의 후계자이신 레오 14세 교황님께 진심 어린 자녀의 마음으로 순명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자리에서 교황님과 협력하며, 우리의 충실함과 친교에 대한 열망도 다시 한번 새롭게 다짐했습니다. 새 교황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사목 방향에 큰 용기와 격려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분이 택하신 교황명 안에도 이미 이런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디지털 시대를 비롯해, 현시대가 마주한 여러 가지 도전에 교황님께서 얼마나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계신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는 최근 레오 교황님께서 반포하신 첫 번째 교황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교황님께서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인 지난 4일 이 권고에 서명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자비와 친밀함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셨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갈 때마다 늘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합니다.
함께 걸어가기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인 건, 서로 만나는 기쁨은 물론 함께 기도하는 순간을 나누며 주님과의 끝없고 새로운 만남의 기쁨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시노드 여정 안에서 “함께 걸으며”,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우리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사목 활동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레오 교황님께서는 “함께”라는 말을 자주 강조하십니다. 실제로 지난 5월 8일, 교황 선출 직후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서 신자들에게 처음 인사하실 때 이 말을 다섯 번이나 되풀이하셨습니다.
이 며칠 동안 여러분은 모두가 인정하는 깊고도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증언으로 가득 찬 한국 교회의 과거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처럼 깊은 신앙을 증거하신 분들의 삶을 되새기게 될 것입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우리 모두 간절히 기도합시다. 또한 여러분은 어려움과 기회가 뒤섞인 복잡한 이 시대를 읽어내고 의미를 함께 찾아갈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시대가 던지는 여러 도전과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맞닥뜨린 현실적 필요에 어떻게 복음적으로 응답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며 사목적 방안을 모색하는 여정에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선교적 회심으로 향하는 공동체적 식별의 여정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건설적으로 소통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열매도 맺게 될 것입니다.
대화하고 증거하는 교회의 사명
성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도 강조하셨듯이, 교회가 신뢰를 바탕으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려면 끊임없는 회심과 참된 쇄신이 필요합니다.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15항에 나와 있듯, 복음화 사명을 받은 교회는 먼저 자신을 복음화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살아 있는 희망을 직접 체험하고 서로 나누는 공동체이기에, 이 희망의 바탕이 되는 뿌리가 무엇인지 항상 귀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필요한 새로운 힘과 활기를 잃지 않으려면, 교회는 끊임없이 복음화되는 은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교계 매체를 통해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이 널리 알려지는 모습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도전에 주목하고, 그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려 힘써 주신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특히, 최근 낙태법 자유를 위한 입법 추진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시고, 가톨릭 신자들과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동참을 호소하신 모습은 교회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사회 안으로 들어가, 서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며 복음이 간직한 빛과 힘, 그리고 풍요로움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교회가 신자들을 통해 인간의 삶에 건네고자 하는 진정한 도움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여전히 삶을 아름답고 선하게 이끌어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대화를 “내적인 사랑의 충동”이라고 정의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처럼, 교회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과 대화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 해 줄 말과 전해줄 메시지가 있으며, 세상과 함께 이루어가야 할 대화가 있습니다(「주님의 교회」(Ecclesiam Suam), 65항 참조). 우리는 교회 생활의 이 측면이 ‘근본적’이라고 불릴 만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특별히 주목했던 주제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공의회는 ‘대화’를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의 방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 (Gaudium et spes) 참조).
‘대화’라는 단어도 레오 14세 교황님의 말씀에서 여러 번 등장합니다. 이처럼 대화를 강조하시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교황직이 평화와 민족들 사이의 대화를 바탕으로 전개될 것임을 미리 알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교황님께서는 지난 6월 17일 이탈리아 주교단과의 첫 만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화의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특별히 권고합니다. (…)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여야 친교가 싹틀 수 있고, 친교가 이루어져야만 진리가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레오 교황님께서는 전임 교황님들의 뜻을 이어받아 “힘이 곧 권리”라는 논리를 단호히 거부하십니다. 대신 화해와 평화, 형제애를 재건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대화를 내세우십니다. 오늘날 우리 세상은 분쟁으로 상처를 입었고, 평화를 위한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레오 교황님께서 동방교회원조협회(ROACO) 총회 참석자들에게 전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군사적 우위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증오와 복수심만 부채질할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기 증강을 선전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평화의 꿈을 계속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동방교회원조협회 총회 연설, 2025년 6월 26일)
평화에 대한 레오 교황님의 관점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섭니다. 이탈리아 주교단에게 하신 말씀에도 이런 생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평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영적인 이상향이 아닙니다. 인내와 용기, 경청과 행동이 어우러진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되는 겸손의 길입니다. 오늘날 평화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깨어 있는 마음과 창의적인 참여를 필요로 합니다”(이탈리아 주교회의에서 한 연설, 2025년 6월 17일). 이처럼 능동적으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화해로 이어집니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화해의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공유하는 역사와 지리적 기반, 그리고 인류애를 바탕으로 서로를 잇는 다양한 노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당부드립니다.
피조물 보호와 젊은이 사목
이 며칠 동안 여러분이 다룰 여러 주요 안건 중에서도, 저는 우리 시대 교회가 맡은 예언자적 사명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두 가지를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피조물 보호와 환경 정의
여러분이 ‘피조물 보호를 위한 미사’ 한국어 전례문을 심의하는 일은, 한국 천주교회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와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Laudate Deum)에서 하신 간절한 호소에 기쁨으로 부응하는 여러 노력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환경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통합 생태론을 실천하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계신 지역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이런 변화들을 직접 목격하며 항상 감사한 마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환경 정의”를 더욱 깊이 생각하며, 이런 소중한 노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이들이 생태 위기의 첫 번째이자 가장 큰 희생자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환경 정의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매우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러한 실천은 단순히 사회적인 요구가 아니라, 신자들에게는 신학적으로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5년을 ‘희망의 희년’으로 선포하시며,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에서 이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는 가장 가난하고 빚에 시달리는 나라들을 위해 「2025 희년: 생태 부채의 탕감」(Jubilee 2025: Remission of the Ecological)을 통해 이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전 세계 청년들을 맞이하며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준비를 특별히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 대회는 한국 교회가 신앙과 환대의 마음으로 전 세계 청년들을 맞이할 역사적인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 준비 과정을 통해 청년 사목에 대한 교회의 헌신을 새롭게 하고, 젊은 세대에게 복음이 간직한 아름다움과 매력을 온 세상에 보여주라는 하느님 섭리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인 준비를 넘어, 진심과 정성을 다해 임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섬세하고 귀한 부분”인 젊은이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그 현장에서, 그들이 어려움을 겪고 희망을 키우며 사랑을 느끼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할 때 비로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청년들이 살아가는 실제 사회와 교회 현장에서 교회의 사명도 비로소 생명력 있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큰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은 언제나 젊은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믿어야 하고, 또 믿을 수 있다고 확신하여야 합니다. 교회와 사회의 미래를 밝힐 주역이 될 젊은이들의 역량을 온전히 신뢰하여야 합니다.
우리 지역 교회들은 희망의 희년에 큰 힘을 얻고, 레오 14세 교황님의 말씀에 힘입어 사회 교리의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울러 피조물을 돌보고 정의와 평화를 두루 살피는 발전을 추구하는 동시에 전 세계 젊은이들의 꿈과 열망에도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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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여러분은 일상에서 수많은 도전과 사목적 노력에 맞닥뜨리면서도 겸손과 용기로 감당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사목 사명을 복음화의 별이시며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온전히 맡겨 드립니다. 성모님의 어머니다운 손길에 여러분의 끝없는 노고와 간절한 바람, 계획을 모두 의탁합니다. 성모님의 중재가 모든 이에게 사도적 열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여러분과 여러분이 돌보는 모든 이에게도 풍성한 은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마음을 담아, 정기총회 기간 동안 풍성하고 뜻깊은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주한 교황대사
+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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