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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왕림 본당 '강완숙 골롬바 순교극' 공연

작성자 : 김준식 작성일 : 2010-09-13 조회수 : 389
  
 지난 12일 평택대리구 왕림본당(주임 윤민재 신부) 교중미사.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조선시대의 한 부인과 하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무대로 꾸며진 제대에 등장한다. “천주님의 세상에는 신분, 남녀의 차별이 없으니 ‘마님’ 이 아니라 ‘형님’으로 불러도 좋다.”는 부인의 말에 하인은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 관구(관구장 양기희 수녀)에서 순교자 성월을 맞아 수도회의 특수목적인 순교자 현양과 더불어, 젊은이 성소계발을 위하여 준비한 한국 천주교회 첫 여성회장 ‘강완숙 골롬바 순교극’ 공연이 이날 펼쳐졌다.
 
 남존여비, 삼종지도, 칠거지악. 철저한 가부장적 봉건사회였던 1760년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양반의 서녀로 태어나 덕산 지방 홍지영의 후처로 들어간 강완숙 골롬바는 혼인한 지 얼마 안 돼 천주교 신앙에 눈을 떴다. 당시 그녀는 “천주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고, 그 종교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올바르니 그 도리가 반드시 참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이 후 골롬바는 신앙에 대한 열정과 극기를 바탕으로 교리를 실천해 나갔으며, 그녀의 행동은 누구나 감탄할 만한 정도가 되었다. 1791년의 신해박해 때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신자들을 보살펴 주다가 자신이 도리어 옥에 갇힌 적도 있었다. 또 시어머니와 전처의 아들인 필립보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켰으나 남편만은 입교시킬 수가 없어 오히려 신앙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아야만 하였다.
 
 어느 날 한양의 신자들이 교리에 밝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완숙은 시어머니와 아들 필립보와 함께 상경하였고, 1794년 말 입국한 주문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그를 도와 활동하였다. 이때 주 신부는 그녀의 인품을 알아차리고 여회장으로 임명하여 신자들을 돌보도록 하였다. 골지식과 재치를 겸비한 강완숙은 여러 사람들을 권유하여 입교시킬 수 있었는데, 그 안에는 양반 부녀자들은 물론, 과부, 머슴, 하녀도 있었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골롬바는 그 동안의 활동으로 인해 즉시 관청에 고발되었고,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41세의 나이에 순교했다.
 
 골롬바는 다음과 같이 최후 진술을 하였다. “이미 천주교를 배웠고 스스로 ‘죽으면 즐거운 세상(즉 천당)으로 돌아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형벌을 받아 죽을지라도 신앙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고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공연을 관람한 김정숙(데레사,62)씨는 “‘첫 여성회장’이라는 면이 마음에 끌렸다.”며 “남녀를 불문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신 선조들의 신심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되었다.”전했다. 
 
 “‘죽음이 두렵습니다. 살고 싶어요.’라는 아들에게 마저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용기를 내어라’ 하며 오히려 격려하는 대목에서 고개가 숙여졌다.”는 지미영(크리스티나, 48)씨는 “그 굳센 믿음의 신앙을 본받아야 겠다.”는 다짐을 말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는 매년 예비 수녀들인 수련자들이 한 분의 순교자를 묵상해 순교극을 올리고 있다. 올해 ‘천주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십니다.’하고 신앙을 증거한 ‘강완숙 골롬바’ 순교극은 이날 왕림본당 공연에 이어 오는 19일 서울대교구 이문동본당, 26일 대구대교구 고성동본당에서도 이어 열린다. 연출을 맡은 이광순(루시아) 수련장 수녀는 “피의 박해가 없는 현 시대에서 순교극을 통해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하고 신자로서의 소명을 다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준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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