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 막내딸과 함께 고 이태석 신부님의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보러 추석연휴 사이에 짬을 내었다. KBS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그분의 삶에 크게 감명 받았던 나는 아이들에게도 같은 체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는 내내 나의 가슴은 감동으로 다시 출렁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고 수단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사랑을 심어주고 떠난 신부님에게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다. ‘왜 하느님은 저렇게 재능 많고 수단에서 꼭 필요한 사람을 그렇게 빨리 데려가셨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안타까운 의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영화관 안에는 나와 식구들 말고도 모두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사제와 수도자들도 많이 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올 때는 등 뒤에서 이런 얘기들을 나누는 것을 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영화를 많이 보아야 하는데 아쉽다. 이런 감동적인 영화보다 감각적인 ‘아저씨’ 같은 영화를 젊은이들이 더 좋아하고 보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이다.
집에 와서 시에나 성녀의 삶을 다룬 글을 우연히 읽다가 이태석 신부님이 떠올랐다. 왜 그리 하느님께서 빨리 데려가셨는지 속상했던 그 의문이 풀리기도 했다. 성녀 카타리나는 선종 당시 나이가 33세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이와 같다. 이태석 사제가 48세의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신 이유도 아마 성녀 카타리나처럼, 그 짧은 생애 속에서 주어진 일, 해야 할 일을 모두 완성했기 때문이 아닐까. (가톨릭신문 성인성녀전 9월 12일자 참고)
이태석 신부는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던 남수단 톤즈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랑을 다 쏟고 세상을 떠났다. “외롭지 않으세요?”라는 PD의 질문에 신부는 “아이들과 항상 함께하니까 외롭지 않죠. 그리고 그럴 시간도 없어요.”하고 웃고 만다.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그는 여러 명이 하기도 어려운 일을 혼자 해냈다. 밤중에 찾아오는 환자를 한 번도 돌려보내지 않고 짜증한 번 내지 않을 정도로 그곳 사람들을 진심을 다해 치유해 주었고, 벽돌을 직접 구어 병원을 지었고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학교를 세워 가르쳤다. 수단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관악대를 만들어 음악을 통해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가 정말 아끼고 돌봤던 한센인 마을의 사람들이 이 신부를 만나기 전의 피폐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 있을 때는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었다.
주민들, 그리고 병든 이들, 아이들과 함께 하여 주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며 최고의 선교임을 깨닫고 함께 하고자 노력했던 한 사제. 꽃 같은 그의 삶은 수단의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었다.
“하느님, 이태석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합니다.”
박명영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