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의 땅, 복음으로!
청소년과 함께 교회의 미래를!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경축하며 구세주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늘 함께 하기를 빕니다.
가난과 겸손으로 우리 안에 오신 구세주
베들레헴의 고요한 밤에 주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날 고도의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운 한 아기에게서 구세주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별을 보고 먼 길을 찾아 온 동방의 박사들처럼, 그리고 깊은 밤 천사의 인도를 받은 목자들처럼 우리도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합시다. 가난하고 겸손한 아기의 모습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병자와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며(마르 2,17), 가난하고 잡혀가고 눈멀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루카 4,18).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 돌아가실 때가 되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사랑의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요한 13,34). 그분은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몸소 그 계명을 실천하셨습니다(요한 19,28-30). 그래서 이 아기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실 구세주이십니다.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가져다준 강생의 신비
오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빛이 온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새롭고 놀라운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시기에 그분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소위 ‘죽음의 문화’가 팽배해 있어 고유한 인간의 존엄성이 갈수록 위협받고 있습니다. 하느님 없는 삶을 살려는 세속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삶은 나날이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탄은 세상을 위한 진정한 기쁨과 희망의 소식이요, 신자로서의 참된 소명을 되새기도록 초대하는 장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탄으로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신성”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며,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과 본래의 품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백성’, ‘주님의 구원을 받은 이들’ 이라 부르리라!” (이사 62,12)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길은 잃어버린 우리의 얼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고귀한 모습을 되찾는 여정입니다.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우리의 눈은 그분의 빛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향합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와 정보화로 인해 여러 방면에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는 옳고 그른 것, 정의롭고 불의한 것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소중한 전통과 종교 문화유산, 그리고 성스러운 것을 외면하게 합니다. 사회적 부도덕과 윤리의식의 결여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방향을 잃게 하였고, 여러 유사 종교들과 신흥 영성운동들은 그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풍조는 교회 안에서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쉬는 교우 증가, 주일미사 참례자 수 감소, 청소년 신앙생활의 어려움 등은 불확실성 시대에 좌표를 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신자들은 존엄한 인격과 참 생명을 잃을 위험에, 그리고 성직자들은 형식주의와 기능주의로 빠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성탄 대축일은 우리에게 ‘희망의 땅, 복음의 빛’이 빛나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새로워지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다시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 안에 이미 깊이 스며든 ‘죽음의 문화’로부터 탈출하라는 초대입니다.
진리의 빛이 사회 속에서
성탄은 신앙인들만의 축제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과 온 인류는 참된 빛과 평화를 갈망하고 있으며, 신앙인들의 확신에 찬 실천적 신앙행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성탄이 모든 이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 위해 교회는 자신의 예언자적 소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인권 유린의 실태, 약자에 대한 무관심과 더불어 한국사회 각층에 어지럽게 실타래처럼 엮여 있는 비리, 부정과 불의, 도덕성의 부재 등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은 우리 신앙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사회 안에서 살고 활동해야 하며 사회문제를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들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의견을 표명하는데, 그것이 ‘교회의 의무요 사명이며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내어놓는 사랑의 행위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사랑의 행위는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사회교리의 핵심에 자리합니다.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신자들이 ‘새 복음화’를 위해, 그리고 정의와 사랑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천명하고 있습니다. ‘인권존중, 생명사랑, 환경사랑, 소외된 이들에 대한 보살핌’ 등은 신앙인들이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지켜내야 할 중요한 그리스도교적 가치들이기 때문입니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향해
우리 수원교구는 지금 교구 설정 5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50주년이 일회성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교구민들이 하나 되어 영적으로 쇄신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으로 메마른 이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신앙인들 각자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거룩함에로 초대되었음을 상기하고 “믿음의 빛이 행실에서도 빛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이 모든 이를 향한 참된 희망의 메시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유다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신앙 여정에 늘 함께 하시기를 간청합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아들 예수님과 일생을 함께 하셨듯이 여러분과 함께 하여 위로와 용기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1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수원교구장 이 용 훈 마티아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