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사이의 메타세콰이어길에 좌판이 펼쳐지고 온갖 살림살이들과 옷들을 파는 ‘아나바다 장터’가 열렸다. 주민들이 모여들어 흥정이 시작된다. 아무리 비싸도 만 원이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파는 사람들의 낯이 익다.
10월 19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가을이 느껴지는 우남아파트와 대림아파트 사이 가로수길에 좌판을 펼친 이들은 수원대리구 권선동본당(주임 배명섭 안드레아 신부) 관할 제12지역 교우들이다.
벌써 오 년 째 열리는 벼룩시장은 지역장(이영희 안나)이 중심이 되어 각 구역장과 지역교우들이 가정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판매를 하고 서로 교환하는 정이 넘치는 장터이다.
올해는 목표도 생겼다. 이상협 신부를 돕기로 한 것이다. 이상협 신부는 권선동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하다 지금은 아프리카 수단에 파견되어 있다.
다른 지역에 사는 교우들도 팔 걷고 나섰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자매들은 커피 좌판대를 만들어 커피를 판매하고, 교우가 아닌 관리소장은 전기를 제공해주고 성금까지 기탁했다. 본당 수녀가 기증한 구피 물고기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지역장 이영희 씨는 “이건 하느님의 기적입니다. 처음 몇 개의 좌판으로 시작했었는데, 해가 갈수록 기증자도 늘어나고 본당 교우도 아닌 동네아이들까지 참여하여 판매이익금을 좋은 일에 써달라며 내는 것을 보고 감격했어요”라며 흔쾌히 참여해 준 교우들과 주민들에게 감사해 했다.
실제 둘러보니 옷들이 가장 많았지만 각종 책들, 가구, 신발 등 물건 종류도 다양했고, 제품 의 질도 좋아 지역주민들의 반응이 좋았다. 몇몇 주민들은 일 년 두 번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성당에서 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며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어 전교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지역에서 하고 있다”고 지역장이 덧붙였다.
지현옥(베로니카) 씨는 “작은 마음들이 모여 커다란 기적을 이루는 일, 천국은 이런 모습일 것으로 생각한다.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떨리는 기쁨”이라고 말하며 식사를 못한 이들을 위해 김밥을 나눠주었다.
이날 세 시간에 걸쳐 판매하고 기증된 수익금은 이백만 원이 넘어섰다. 수익금은 본당을 통해 교구에 전달되어 수단으로 보낼 예정이다. 판매 후 남은 옷과 신발들은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참여자들은 함께 손을 잡고 둘러서서 마침기도로 주모송을 바쳤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서로에게 등을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참 따뜻합니다.”
그들이 전해준 초대장에 있는 글귀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였다. 돌아오는 길 내손에도 그들이 전해준 정 한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조정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