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지구 하안본당 끄레도성가대 단원 중에 부부 4쌍 모여 성지순례를 꿈꾼 것은 10년 전. 성지순례를 가겠다고 열심히 회비를 모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됐다.
자녀들도 많이 컸지만, 선뜻 유럽으로 성지순례를 갈 수는 없었다. 보통 로마 바티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코스는 보통 10일이 훌쩍 넘는 일정이라 맞벌이 직장인이 대부분인 우리로써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다행히 모임의 구성원은 아니지만 성가대에 함께 했던 부부 3쌍과 같은 본당에서 함께 활동하는 분들이 모여 가톨릭신문사의 도움을 받아 하안본당 신자 16명으로 성지순례단을 꾸렸다. 우리들은 오랜 시간 순례를 준비하면서 주님께 의탁하고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우리들을 잘 인도해 주실 것을 함께 기도했다.
또한 성경 안에서, 전례 안에서, 가르침 안에서 만났던 예수님을 성지에 새롭게 뵙고, 예수님의 구원 의자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시어 순례 동안에 항상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물게 해 주시기를 청했다.
11월 6일 오전 8시30분, KE603편으로 홍콩 첵랍콕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내에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친 후 고속 훼리를 이용하여 마카오로 이동했다.
1시간 여 지나 마카오에 도착한 우리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소속 하 데레사 수녀님(중국 마카오교구 성지순례 안내 센터장)의 안내로 순례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마카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 성바오로성당.
정면 부분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성당이지만 마카오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르는 명소 중의 명소이다.
1602년에 이탈리아 예수회 수도사인 카를로 스피놀라가 설계하고 종교 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피난해 온 일본인과 현지 장인들의 도움으로 1637년에 완성된 이 성당은 타이파와 나무로 만들어져 안타깝게도 1835년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건물 정면 벽과 계단, 일부 지하실만 남아 있었다.
이 성당의 앞 벽만으로 많은 역사의 유적을 볼 수는 없지만, 여기에 새겨진 글과 그림으로 창세기에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가톨릭의 교리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바오로성당의 건축은 유럽 문예부흥시대의 건축양식과 동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오랜 기간 중국과 외국의 건축, 문물, 예술가들도 중시해 왔다. 성당의 안쪽으로 들어서면 당시 성당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양쪽의 기둥이 서 있던 자리와 당시 묘지로 사용했음을 보여 주는 묘지터가 있다. 지하에는 작은 종교박물관과 납골당이 있는데, 이전 천주교에서 사용하던 성물들과 일본과 베트남에서 순교한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안내자 하 데레사 수녀는 “성 김대건 신부님께서 학생으로 배움을 위해 마카오에 머무는 동안 이 성당을 자주 들러 간절한 기도를 했고, 당시 사제들만 통과할 수 있는 성당 정문의 돌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반드시 사제가 되어 이 문을 통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며, “170여 년 전 이곳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간절히 기도하셨던 김대건 신부님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며 신앙에 대한 다짐을 굳건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
둘째 날 아침. 우리들은 성안토니오성당을 방문하여 아침기도와 말씀의 전례, 전대사를 얻기 위한 기도를 하며 김대건 신부님의 행적을 따라 가보는 순례를 시작했다.
성 안토니오성당은 1558년부터 1560년에 걸쳐 대나무와 나무로 지어진 성당으로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성당 중에 하나로 1874년 화재로 불타 없어져 1930년대에 재건했다고 하지만 너무 잘 보존되어 있고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그래서 마카오 식민지 시절 포르투갈인들의 결혼식이 많이 열렸다고 한다.
성당 안에는 한인 교포 신자가 봉헌한 김대건 신부님의 목각상과 유해가 모셔져 있었다. 나는 멀리 마카오 까지 오셔서 한국 천주교를 위해 공부에 전념하신 김대건 신부님을 기억하며 잠시 묵상의 시간도 가졌다.
이어 김대건 신부님 동상이 모셔져 있는 카모에스 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인솔하시던 하 데레사 수녀가 공원 입구에 잠시 멈춰 서서는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모든 순례자들에게 나누어 줬다. 그리고 한 주상복합아파트를 바라보며 “이곳이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 자리인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고 아파트로 변했다. 이곳이 김대건 신부님께서 공부하신 조선신학교 건물 자리로, 잠시 멈추어 주님께서 일찍이 많은 선교사들을 파견하시어 작은 섬나라 마카오에 복음을 전하신 놀라운 역사들을 만나보자”면서, “성소가 전혀 없는 마카오에 신학생을 주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카모에스 공원은 1557년 한 때 마카오에서 살았던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 카모에스를 기려 만든 ‘흰비둘기 공원’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85년 10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이 동상을 제막하였는데, 공원 한구석에 있던 동상은 이후 양지바른 지금의 잔디밭으로 옮겨졌고, 1997년에는 홍콩과 마카오에 사는 신자들의 지원으로 보수를 거쳐 지금 좌대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좌대 네 개면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약력이 한글과 중국어, 포르투갈어, 영어로 아로새겨져 있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힘들고 어려웠던 유학시절을 묵상하며 함께 기도하고 ‘순교자의 믿음’ 성가를 함께 불렀다.
골로안 섬으로 이동하여 일본 에도(江戶)시대에 나가사키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온 일본인들이 일본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스페인 선교사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기념해 지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성당을 순례했다.
1928년 바로크양식으로 건립된 이 성당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고, 김대건 신부님의 사진과 한국교회 2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여의도 광장 사진이 보관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성당 앞에 1910년 포루투갈의 군인과 경찰들이 골로안 섬 주변의 많은 해적과의 전쟁에서 이긴 기념탑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당을 순례하고 나오자 엄청나게 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펜하성당 순례를 포기하고, 다시 본토로 돌아와 성라우렌시오성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성당을 가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간 곳은 살레시오중고등학교였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교문 앞에서 피를 피하는 것을 본 교장신부님은 우리에게 흔쾌히 회의실을 내 주셨다. 우리는 예고도 없이 모인 회의실에서 그동안 순례한 성당에 대한 소감을 함께 나누며 순례의 의미를 되새겼다.
비가 멈추자 순례한 성당은 1562년 예수회 선교사가 건립한 성 라우렌시오 성당
성안토니오성당과 망덕성모성당과 함께 마카오의 가장 오래된 성당중의 하나로 성바오로성당이나 성안토니오성당과는 달리 화재나 다른 피해가 없었던 곳이라 그런지 아주 깨끗하고 예뻤다. 초기에는 이 성당에 바람을 알리는 깃발을 걸어 두었고, 또한 이 지역은 항해업을 하는 부유한 포르투갈인들이 많이 살았으므로, 그들은 이곳에서 항해하는 가족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기도했다고 하여 현지인들은 지금도 ‘풍순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7세기 성당부근은 마카오의 상업중심지로서, 다른 성당에 비해 면적도 넓고 아름답게 지어 1576년부터 이미 본당신부가 상주했다고 한다.
이어 순례한 곳은 성요셉 신학교 성당.
이곳은 예수회에서 선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세운 신학교 겸 성당으로 독특한 돔형 지붕과 꽈배기 모양의 기둥, 화려한 천장 그림 덕분에 다른 어느 성당보다 웅장했다.
건축 구조는 로마에 있는 예수회의 예수대성당과 비슷하고 1694년 예수회가 건립한 북경의 남경성당과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고 한다.
주 제대 중앙에는 예수성심상을 모시고 왼쪽에는 예수회 창설자인 성이냐시오 로욜라, 오른편에는 예수회 최초의 동방 선교사로 중국에서 생을 마감한 동방의 사도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을 모셨고, 제대 오른쪽에 성인의 오른팔 뼈가 안치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순례한 곳은 성아우구스티노성당.
성당의 정면 구조는 간단한 유럽 르네상스시대의 고전식 구조로 되어 있는데 높이가 17미터, 성당 내부는 굵은 기둥이 두 줄로 대칭형으로 세워져 있고, 중앙에 주 제대와 주변에 4개의 작은 제대 그리고 나무로 만든 컵모양의 강론대가 있었다.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의 독특한 설계로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성체를 영하는 난간이 있었다.
성당 정면 깊숙이에는 십자가를 지고 계시는 정말 살아계시는 듯한 예수님 성상이 있는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정말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실제로 느낄 수 있도록 했고, 우리들은 가까이 가서 한 사람씩 예수님의 발을 만지며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이 ‘고난 예수상’은 매년 사순 제1주일 전 토요일 저녁 7시 주교좌성당으로 행렬하여 모시고 다음 날 오후 4시 예절 후 다시 이 성당의 본래 위치로 모시는 행렬이 있다고 한다. 이 행렬은 적어도 16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귀국일인 11월 9일은 주일이었다. 그래서 홍콩에 있는 로사리오성당에서 오전 8시 45분 영어 미사에 참례했다. 홍콩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하루에 6번의 미사가 있는데, 영어 3회, 광동어 3회로 거행되고 있었다.
한국 교회의 첫 사제를 꿈꾸었던 철부지 소년들이 조선 교회를 가슴에 안을 청년으로 성장한 곳 마카오. 순례단은 이곳을 3박 4일 순례하면서 김대건‧최양업 신부님의 숨결이 서린 마카오 성 요셉신학교와 이들이 매일 미사를 드렸을 성 안토니오성당 등을 순례하며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깨에 지고 묵묵히 하느님 뜻을 따르던 신앙선조들을 떠올리며 두 손을 모았다.
또한 이 분들이 상상도 하기 힘든 어려움 속에서 신앙을 키워 오늘의 우리에게 이어준 신앙선조들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순례를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좀 더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이 분들로 인해 이어진 마카오와 한국 교회 큰 인연이 다양한 교류와 만남을 통해 새로운 열매를 맺기를 기도해 본다.
최효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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