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교세 강했던 지역에 1891년 공소 설립
어린이·부녀자 위한 사목 펼치며 교세 확장
현재는 수원성지 성당으로 선조 현양에 매진
▲ 1979년 신축된 북수동본당 모습.
둥근 몸체와 뾰족한 머리. 마치 주교관(主敎冠)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성당을 지닌 북수동본당(주임 나경환 신부).
본당은 90여 년의 역사 동안 신앙의 불모지였던 수원지역에 신앙의 뿌리를 내린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의 수원시는 교구좌와 교구청이 자리한 교구의 중심지다. 하지만 교구에 본당들이 설립될 당시만 해도 수원의 교세는 미미했다. 1891년 왕림본당의 공소가 수원에 생기면서 신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공소시절부터 화양학교를 세워 어린이를 교육하는 사업을 벌일 정도로 복음화사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1906년에 북수리의 기와집을 사들여 내부를 개조해 성당으로 만든 본당은 1923년 르메르 신부가 부임하면서 ‘수원본당’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수원에 유일한 본당이 들어섰지만, 수원지역은 전교가 잘 안되기로 유명했다. 수원은 박해시기 수많은 신자들이 죽어나간 처형지인 만큼, 신앙의 명맥이 약한 반면 무속신앙이 강했다. 게다가 지역에서 신식교육을 받은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개신교 예배당을 다녔을 정도로 개신교 교세가 강한 곳이었다. 이런 본당에서 신자를 폭발적으로 늘린 것이 4대 주임인 심응영(폴리 데시데라도) 신부다.
심 신부는 부인들로 명도회를 조직해 전교에 박차를 가하고, 청년신심 단체인 돈보스코회와 어린이 교리반을 만들어 청소년사목도 강화했다. 프랑스의 원조와 자신의 사재를 동원해 연와조 고딕식 성당을 건축하기도 했다.
또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설립한 소화강습회도 소화학원으로 발전시켜 어린이들을 교육했다. 소화학원에서 이어온 소화초등학교는 2002년 본당에서 원천동으로 이전해 가톨릭정신을 바탕으로 한 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심 신부가 부임할 당시 70여 명에 불과했던 신자는 심 신부 재임 18년 동안 2000여 명으로 증가했다.
본당은 설립 이후 35년 동안 수원의 유일한 본당으로 점차 교세를 확장해나갔다. 1959년 고등동본당을 분가시키면서 본당의 이름이 북수동본당으로 바뀌었다. 분당 이후에도 복음화에 열성을 기울였고, 특히 새로운 교리교수법을 주일학교에 도입하는 등 청소년사목에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 본당에서 만날 수 있는 성당은 1979년 신축한 성당이다. 신축 당시 낡고 협소했던 옛 고딕식 성당이 철거됐지만, 본당은 수원 최초의 고딕식 성당인 수원성당을 복원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2000년 북수동성당과 수원 화성일대가 성지로 선포되면서 현재 본당은 성지를 가꾸고 신앙선조를 현양하는 일도 함께하고 있다. 신앙선조 83위를 현양하는 성지는 해마다 현양대회와 대피정을 열고, 달빛순례를 진행하는 등의 현양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본당 설립 소화강습회에서 시작된 소화초등학교의 옛 건물.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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