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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소식

교구아들 바오로와 함께 하는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5

작성자 : 홍보전산실 작성일 : 2016-09-08 조회수 : 1175



   지난 7월 8일. 아들 바오로와 함께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다섯 번째로 찾은 곳은 수원교구 용인에 위치한 ‘손골성지’와 ‘은이·골배마실성지’다.


   박해시대 지방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기해박해(1839년) 전후에 서울 가까이로 이동하여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던 광교산에 있던 손골성지를 먼저 찾았다.


   아들 바오로와 찾은 손골성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도 좋고 경치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풀 향기가 싱그럽게 나는, 옛날엔 깊은 산골 마을이었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손골 교우촌은 예로부터 향기로운 풀이 많고 난초가 무성하여 ‘향기로운 골짜기’란 뜻의 손곡(蓀谷)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 준비를 하였고 이곳에서 피정도 하고 쉬기도 하였다. 손골은 순교지는 아니나 손골에서 생활하던 신자 중에 순교자들이 여럿 있다.


   손골에서는 특별히 성 도리 신부와 성 오메트르 신부를 기념한다. 또한 손골에 살던 신자 이 요한,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 삼대(三代)가 1871년 순교하셨는데 이분들도 기념하고 있다. 도리 신부는 한국에서 머문 시간은 거의 대부분을 손골에서 지냈고 손골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오메트로 신부는 손골을 포함한 지금의 수원교구 지역에서 사목하다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두 선교 사제를 기념하기 위해 손골에는 도리 신부 기념관과 오매트르의 집을 세웠다.


   1966년 도리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고향 본당에서 도리 신부 부모가 쓰던 맷돌로 돌 십자가 두 개를 만들어 그중 하나를 손골로 보내왔는데, 그 십자가를 근거로 손골에 도리 신부 순교를 기념하는 비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아들 바오로와 함께 묵념하고 기도하였다. 머나먼 타국에서 언어와 풍습이 달라 많이 힘든 선교를 했을 두 외국선교사 신부님의 고뇌가 느껴져서 마음이 아려왔다. 성지를 돌아보는 바오로와 나의 발자취에는 어느새 프랑스 선교사 신부님들의 발자취가 가까이 느껴졌고, 교우들의 형제적 사랑, 성교회 충정이 서려 있는 이곳, 손골성지에는 우리나라에 온 외국 선교사 신부님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정성껏 돌보아 준 손골 신자들의 마음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발길을 옮겨 은이·골배마실 성지를 찾았다.

   골배마실은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그의 나이 15세 때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게 될 때까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대건 신부는 사제가 된 후 이곳 골배마실에서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감격의 재회를 한다.


   골배마실과 이웃한 용인 양지면에 있는 은이성지는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사제가 되어 귀국한 김대건 신부가 첫 사목지로 택하고 사목한 본당이다. 김대건 신부는 이곳에 공소를 설립하고 용인 일대의 사목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조선 땅에서는 처음으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또한 체포되기 직전 공식적으로 최후의의 미사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은이 성지는 모방 나 신부가 사목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은이(隱里)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이며, 천주교 박해시기에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조용하고 한적하다. 또한 천주교 신자들의 정신적인 장소인 셈이다. 성지 가운데 작은 마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이 서 있고, 안쪽으로 작은 성당 하나와 김대건 신부 기념 유물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성당 내부에는 천주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이 가득하다. 성지 맞은편 작은 언덕으로 십자가의 길이 펼쳐진다. 냇물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14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산책로가 있다. 은이성지 유물 전시관에는 인근 교우촌에서 사용된던 예 서적류를 비롯하여 각종 성물 등을 관람할 수 있고 김대건 신부의 신앙과 영성을 엿볼 수 있다.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중국 상해의 김가항성당을 원형대로 복원한 새 성당에서 기도하면서, 순교자들의 마음과 사제서품을 받고 26살로 순교한 김대건 신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고 첫사제 김대건 신부님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아들 바오로와 먼저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 앞에서 아들 바오로를 전구하는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너무 더운 한낮이라 십자가의 길은 못 바치고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물 전시관에서 오랫동안 아들 바오로랑 성체조배로 기도를 하였다. 내가 아들 바오로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투덜거리면서도 순교지를 따라나서는 아들 바오로가 오늘따라 더욱 의젓해보이고 예뼜다. 하느님이 아들 바오로와 함께 하심을 느낀 하루였다.


박명영 가타리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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