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성당과 곰실공소를 찾아 순례한 다음날, 경기도 양평에 있는 수원교구 양근성지를 찾았다.
오후 2시 미사라 땡볕이 내리쬐는 그 시간에 도착하니, 성지 입구에서부터 푹푹 찌는 더위가 우리 가족을 엄습했다. 더위 속에서 양근성지를 찾은 우리가족은 먼저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봉헌했다. 우리 가족이 순례하는 성지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순교자들의 영성을 본받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양근성지는 이승훈 베드로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후, 한강 수표교 이벽의 집에서 이벽과 권일신에게, 또 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 대감 마을 또는 한감개에 살고 있던 권철신에게 세례를 베푼 후 천주교 신앙생활(아침 기도, 저녁 기도 등)을 실천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 베드로처럼 우리 가족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 우리 가족은 가족이 다 함께 저녁 10시에 모여 저녁 기도를 바친 지가 16년째이다.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먼저 성호를 긋고 반성기도를 하면서 저녁기도문을 바친다. ‘사제를 위한 기도’와 ‘가정을 위한 기도’를 남편이 하면, 자녀들이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나는 ‘자녀들을 위한 기도’와 ‘부부를 위한 기도문’을 바친다. 그리곤 가족이 하루 동안의 일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묵주기도를 5단 바친다.
이렇게 우리 가족이 함께 ‘가족기도’를 16년 동안 실천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무한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했고 앞으로도 우리 가족기도는 죽는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가족기도’를 계속 이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양근성지로부터 충청도와 전라도로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었으며, 지도급 평신도들이 가성직 제도(또는 모방 성직제도)로 성직자 역할을 하면서 미사와 견진성사를 2년간 집전하던 곳이다. 그래서 양근성지를 천주교회의 요람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이곳 양근성지는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 부부와 쌍벽을 이루는 조숙 베드로, 권천례 데레사 동정 부부와 20여 명의 순교자들이 태어나거나, 신앙을 증거하다 체포되어 순교한 곳이다. 한국 교회는 양근성지와 관련 있는 순교자 조용삼 베드로(1801년 순교), 권상문 세바스티아노(1802년 순교), 홍익만 안토니오(1802년 순교), 조숙 베드로· 권천례 데레사 동정 부부(1819년 순교)의 시복 시성을 추진하여 시복의 결실을 얻었다.
양근성지는 십자가의 길이 특이한 조형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가슴을 잔잔하게 하였다. 그리고 동정 순교자 시비 앞에서 한참을 머물며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와 아들 바오로가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를 나와 함께 무사히 그리고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청하는 은총을 청했다. 또한 양근성지의 순교자들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가족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간절히 바쳤다.
우리 가족이 동정부부의 영성처럼 살아가기를 희망하며 하느님 안에서 신앙을 잃지 않는 가족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특히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늘 머물며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기를 바란다.
“주님, 유난히 더운 날에 순교자들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자 이렇게 가족이 성지를 찾았으니, 당신 품에서 평화로운 안식을 누리고 있는 순교자들의 영성을 본받아 저희 가족들도 주님을 향한 영적 여정의 순례자가 되게 하소서.”
박명영 가타리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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