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미사가 제대로 봉헌되기까지 독서와 제대 준비를 포함해 보이지 않은 많은 손길과 봉사자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손길 가운데 그 주일의 복음 말씀을 나타내는 제대 꽃꽂이는 섬세함과 어느 정도 전문성을 요구하기에 봉사자로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성당마다 제대 꽃꽂이 봉사자의 숫자는 다른 단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고 지속적인 활동에 나서는 봉사자를 찾기란 더욱 어렵다. 제대 꽃 봉사를 20년 넘게 한 주인공이 있어 만나보았다. 그 주인공은 평택대리구 동탄부활 본당 이성옥(마리아) 자매.
“고향 집에서 고등학교에 가려면 8킬로미터가 넘는 산길을 가야 했어요. 어느 가을 날 등교길 자주색 예쁜 용담이 눈에 띄더군요. 찾아보니 산길 곳곳에 예쁜 꽃들이 참 많았어요. 덕분에 집에 오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어요.”
성당 제대 꽃꽂이 봉사자로 24년째 활동하고 있는 이성옥 씨는 꽃과 인연을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10대 소녀 시절 인연을 맺은 이성옥 씨의 꽃과 만남은 지난 94년, 화성시 발안에 위치한 해병대 사령부 성당에서 꽃꽂이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내년 봉사자 활동 25주년 은경축을 앞두고 있다.
이 씨의 일주일 일정은 주일 미사에 봉헌할 제대 꽃 제작에 맞추어진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일 복음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어떻게 꽃으로 잘 표현할까 고민한다. 정리가 잘 되지 않으면 사제들의 강론집을 여기저기서 찾아 읽기도 한다. 매주 금요일은 주일 미사에 봉헌할 꽃꽂이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시간. 아침 일찍 성당에서 기도하고 서울 양재동 시장에서 꽃을 구입해 본당 헌화 회원들과 작품을 완성하면 오후 4시가 훌쩍 넘는다. 퇴근한 남편 식사를 챙겨주기 전까지 금요일 이 씨의 하루는 제대 꽃 봉헌을 위한 시간으로 온전히 바쳐진다. 성탄이나 부활 즈음에는 남편의 식사마저 챙겨주지 못하며 꽃 제작에 시간을 봉헌한다.
20년 넘게 매주 금요일 일정을 제대 꽃 만드는 일로 채우게 되자 친구들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어졌다. 지난 2002년 어느 금요일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남편과 두 아들을 먼저 강원도 시댁에 보내고 자신은 성당 제대 꽃꽂이를 완성한 뒤에 빈소에 도착하는 불효(?)를 저질렀다.
“금요일 친구를 만나거나 다른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서운하지는 않아요. 매주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으니 오히려 행복하죠. 하느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준 셈 아니겠어요?”
친구들과 만남까지 미루고 시부모 빈소까지 늦게 가면서까지 봉사를 해 온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 씨는 망설임 없이 부르심이라고 말한다. “고교 시절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학교를 1년간 쉬었다 복학했어요. 한 살 어린 후배들과 공부를 하며 이른바 ‘왕따’를 경험했죠. 하지만 꽃이 있어 외롭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꽃과 함께 하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해요. 하느님이 만드신 여러 피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인 꽃을 매주 만지며 거룩한 미사에 봉헌하니 이보다 더 큰 은총이 있을까요?”
매주 꽃꽂이 봉사를 하고 있지만 이 씨에게도 한 때 위기가 찾아왔다. “장교로 있던 남편이 승진에서 떨어져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전역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을 때 정말 하느님이 원망스러웠어요. 자존심이 상해 어느 날인가 남편에게 군인 성당에서 일반 성당으로 옮기자고 말했어요. 남편이 그러더군요. 제대하는 날까지 군성당에 다니며 봉사하자고. 힘든 마음을 극복하는 것이 참 신앙이 아니겠냐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제 나약한 신앙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남편에 대한 든든함과 존경심이 생기더군요.”
이 씨의 남편은 본당 설립 초기부터 줄곧 소공동체 남성 반장으로 활동하면서 이 씨의 제대 꽃 봉사를 묵묵히 격려하고 헌화회원들에게 먹거리를 사다 주는 든든한 후원자다.
부모의 굳건한 믿음을 물려받은 덕분으로 이 씨의 두 아들은 가톨릭계 고교 교사와 해군 군종병으로 각각 근무하며 어머니의 뒤를 잇고 있다. 본당 주일미사 반주자로 활동 중인 큰 아들이 “어머니만큼 자신 없지만 10년은 꼭 봉사하고 싶어요.”라고 말을 했을 때 정말 감사했다는 이 씨. “제대 꽃 봉사를 못하게 되더라도 또 다른 봉사를 계속 하고 싶다.”고 희망을 내비친다.
교회 봉사에 임하려는 후배들에게 이 씨는 조심스레 부탁한다. “꽃꽂이 봉사를 처음 시작하면 청소하는 것부터 배운다. 청소 잘 하는 것도 헌화 봉사의 일부이다. 장식된 꽃은 예쁘지만 그 과정은 힘들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자신이 느낀 한계와 부족함을 말하는 이 씨의 고백은 봉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고민이다. 이 씨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미사를 봉헌할 때 제대 앞 설치된 꽃의 잘못된 부분에 자꾸 신경을 쓰다가 미사를 제대로 봉헌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어요. 주변에 수녀님들이 부담감을 버리고 이제 좀 쉬라고 가끔 말씀 하세요. 저의 오랜 활동이 본당 꽃꽂이 봉사 후배들의 성장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을 자주 합니다.”
얼굴이 나오지 않는 조건으로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이 씨에게 언제 가장 큰 위로를 받았는지 물어보았다.
“동탄으로 이사 오기 전 성탄이나 부활 시기에 꽃꽂이 작업으로 늦게 귀가하면 본당 수녀님이 남편에게 전화를 해 제 대신 양해를 구해 주셨어요. 언제인가 한 번은 본당 신부님이 부부 동반으로 남편까지 저녁 식사를 초대했어요. 신부님이 남편의 지지가 없었으면 봉사하기 어려운 일이니 고맙다고 남편에게 얘기해 주시는데 정말 감사하고 큰 위로가 되더군요.”
두 시간 가까이 이 씨의 얘기를 들으며 돌아설 때 갑자기 돈 보스코 성인의 말이 떠올랐다. ‘거룩함이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임지훈 베드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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