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내 성가정 성지(전담 최재필 안드레아 신부)는 2월 1일 오전 11시 이천시 호법면 이섭대천로 155번길 38 – 13 성지 소성당에서 ‘성 이문우 요한(1809~1840) 순교 제178주년 기념 현양미사’를 봉헌했다.
원로사목자 김학렬(요한 사도)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이문우 요한 성인은 녹암 권철신(암브로시오)의 외증손”이라 소개하고 “성 이문우 요한이 순교하기 60여 년 전 천진암에서 우리나라의 천주교회가 창립됐다.”고 말했다.
교회사 학자이기도 한 김학렬 신부는 ‘교의 헌장’을 인용해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은 이미 교회 한가운데에 있는 교회의 일원”이라며, “하느님을 뜨겁게 섬기는 화세(火洗)로써 그들은 이미 신자(信者)가 된 것이며 그 좋은 예가 바로 ‘천진암 강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천주교회는 ‘신앙 공동체’인 천진암 강학으로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한 김학렬 신부는 “천진암 강학에서 이벽(요한 세례자) 성조가 지어 부른 ‘천주공경가’에 대해, 그 제자들이 ‘십계명가’로 화답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학렬 신부는 “육화(肉化)와 교환(交換)의 신비로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시어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삶을 살자.”고 신자들에게 당부했다.
이날 현양미사에 참례한 김금순(로사·곤지암 본당) 씨는 “곤지암 본당의 주보이시기도 한 성 이문우 요한의 성덕을 본받아 성 가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얻기 위해 매주 이곳 단내 성 가정 성지를 순례한다.”고 밝혔다.
일명 ‘경천’으로도 불리는 이문우 요한은 경기도 이천의 단내 옆 동산리 양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5세 때 양친을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했다. 독신생활을 원하였으나 양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순종으로 양어머니의 뜻에 따라 결혼했고, 몇 년 후 아내와 두 어린 자녀가 사망하자 주위에서의 재혼 권유를 거절하고 독신으로 살면서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는 한편 주교를 보좌하며 지방을 순회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옥에 갇히자 사방에서 희사를 모아 체포된 교우들을 돕고, 박해 상황을 주교와 신부들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던 중 11월 11일 자신도 체포되었다. 이 때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고, 오히려 당황해 하는 포졸들을 재촉해서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과 형조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참아낸 끝에 사형을 선고받고,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2명의 교우와 함께 31세의 나이로 참수되어 순교했다.
단내 성지는 성 이문우 요한을 비롯해, 성 이호영 베드로(1803∼1838), 성녀 이소사 아가타(1784∼1839), 성녀 조증이 바르바라(1782∼1839),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1780∼1839) 등 다섯 성인을 현양하는 성지다. 단내 성지의 야외 광장 우측면을 감싸고 있는 오방이산 끝자락에는 이곳에서 탄생하여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정은 바오로와 그의 재종손 정양묵 베드로 순교자의 묘소가 있다.
※문의 031-633-9531 단내 성 가정 성지(http://www.dannae.or.kr/)
성기화 요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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