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와 미사를 봉헌할 때 우리가 믿음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예수는 2천년 전 이스라엘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공생활 3년을 제외하고 예수는 거의 모든 생애를 이스라엘 나자렛에서 보냈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간 예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까? 성경에 따르면 평범한 집 아들로 태어나 이름 없는 젊은이로 살아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른바 88만 원 세대처럼 열정페이를 받으며 하루하루 힘겹게 일했을 청년이었는지도 모른다. 볼품없고 가난했던 나자렛의 평범한 청년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겠다는 기도와 다짐은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의 결단을 요구한다. 만일 누군가가 청년 예수의 지극히 평범한 어쩌면 별 볼 일 없었던 삶을 따라가자고 말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결단을 넘어 또 다른 선택과 결심을 요구한다. 예수의 나자렛 삶을 따르는 일을 평생 소명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수도자 두 사람을 찾아가 보았다.
경기도 안산에서 시흥으로 가는 길목의 한 외국인 밀집 주택가, 중국어 간판이 보이는 좁은 골목을 지나 허름한 다세대 주택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방문하기로 한 곳은 복자 샤를르 드 후코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 안산 분원.
수도원을 알리는 멋진 간판이나 이정표를 기대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좁은 골목을 여러 차례 물어물어 간신히 인터뷰 시간에 맞춰 수도원이 있는 다세대 주택에 도착했다. 한 쪽이 찌그러진 대문을 지나 낡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 3층에 도착했다. 바람을 막고자 비닐을 몇 겹으로 칭칭 감아 놓은 출입문 앞에 이르러 인기척을 했다. 이윽고 백발의 한 일본인이 낯선 방문객을 맞이한다. 야마무라 쥬네오 수사(사도요한).
그는 지난 88년 파견되어 30년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와 같이 살고 있는 또 한 사람은 프랑스 출신 피에르 아브릴(베드로) 수사. 한국 이름 ‘안춘석’인 아브릴 수사는 서원을 하고 곧바로 한국에 와 40년 넘게 살고 있다.
두 사람의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수도자의 모습, 즉 거룩한 분위기의 경당에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모습과 거리가 멀다. 수도복을 입지 않고 전세로 얻은 일반 주택의 방 한 칸을 수도원 겸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옥탑 방 한 켠에 마련된 아담한 경당이 없다면 이 곳은 수도원이라기보다 시골의 오래된 일반 가정집과 비슷했다.
두 수사는 한국에 도착한 이후 얼마 전까지 직업을 갖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했다. 수도원의 원칙 즉, 예수가 나자렛에서 살아간 것처럼 일상 생활에서 육체적인 단순 노동을 선택해 직접 노동자로 일했다. 수도자의 신분이라 평소 한 시간 이상 성체조배를 하고 성무일도를 드리지만, 일터에서는 근로자 신분으로 현장에서 주로 기도를 바친다.
한국에서 안 수사가 시작한 일은 도배 작업이었다. “70년대 여의도 아파트를 짓는 공사장에서 며칠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도배를 하다 쓰러졌어요. 너무 힘들어 택시를 타고 수도원으로 돌아와 나흘 간 앓아누웠어요.” 프랑스 출신 안 수사가 그때 배웠다며 공사장에서 흔히 쓰이는 일본식 용어를 꺼내 놓는 모습은 신기할 따름이다.
중학교 시절 ‘동양에서 선교사로 일하기’를 성소로 느낀 안 수사는 수도회 총장에 편지까지 보내며 한국행을 설득한 끝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런가하면 쥬네오 수사는 병원에서 조무사로, 때로는 주물공장에서 노동자로 살아왔다. 언제부터인가 고정적인 일을 갖기 어려운 나이가 되자, 매일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여러 공장에 파견되기도 했다.
“용역회사를 통해 여기저기 많은 공장에서 일했어요. 상하차, 주물공장 등 다양한 일을 많이 했어요. 주물공장 일도 힘들었지만 부품 검사하는 작업이 제일 힘들었어요.”라며 근로자로서의 삶을 회상한다.
물론 두 사람은 수도자라는 신분을 결코 드러내지 않고 다른 외국인과 똑같이 인력시장을 찾아 구직활동을 했다.
저녁 식사시간까지 이어진 대화에서 두 수사는 사목이나 선교,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하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근로자들과 똑같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살아왔다. 공장이나 현장에서 누가 쓰러지면 같은 동료로 함께 살며 위로하는 일, 그것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목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예수가 그렇게 살았다. 나자렛 영성은 거창하지 않다. 이 몸을 갖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일하는 것이다. 선교는 복음에 따라 얼마나 잘 사느냐에 달려있다.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구원 받은 셈이다.” 쥬네오 수사는 힘주어 답변을 이어갔다.
‘수도자라고 대접 받으며 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왜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선택하며 수도자의 길을 걸었을까?’라는 질문에 안 수사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에 먼저 입회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자렛 삶을 선택했다.”고 입회 동기를 설명했다.
안 수사의 입회 동기를 들은 쥬네오 수사는 “나와 비슷하다.”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청년 시절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인도여행을 갔는데 현지에 접한 수도회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거창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것도 가능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희가 넘은 두 수사는 더 이상 근로자로 일하지 않는다. 요즘은 불어 회화 강의나 아픈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바치면서 현장을 누비고 있다.
굳이 ‘나자렛 영성’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예수가 이 세상 속 사람 사이에서 걸었던 가장 낮은 자리를 선택해 살아왔다. 안 수사가 몇 년 전 교회 잡지에 기고한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낮은 자리에 계시는 예수님께 다가가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방풍 비닐이 투박하게 붙여져 있는 수도원 경당 창문 너머로 대형 교회와 빼곡한 주택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바깥과 경당의 경계는 희미하다.
두 수사가 꾸미고 있는 공동체는 세상 속에 있지만 2천 년 전 예수가 살았던 나자렛의 보금자리를 따라가고 있다. 누구나 꿈꾸지만 섣불리 선택할 수 없는 길. 세상 안에 살고 있지만 세상 속에 속해 있지 않은 그리스도인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나의 나자렛 예수, 나의 나자렛은 어디 있을까?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21,3).
임지훈 베드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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