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선 뿌듯하셨나 봅니다. 당신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갈비찜’을 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시며,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사실 특별히 먹고 싶어서 말씀드린 것은 아니었어요.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시길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을 뿐이죠. 그런데 어머니께선 오랜만에 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꽤 고민하셨나 봐요. 나이가 들어 혹시 간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 아들 입맛에 안 맞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 저런 고민에 둘러싸여 조심스럽게 만드셨겠지요. 아들의 맛있다는 한마디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쩌면 여느 요리경연대회 참가자 못지않게 초조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머니의 우려와는 달리 저에게 어머니의 손맛은 그대로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의 음식은 늘 맛있었어요. 그런데 갈비찜을 건네주시는 어머니의 ‘손’은 전과는 조금 다르네요. 우리 엄마 손이 이렇게 말랐었나 요즘 들어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니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에게는 조금 더디게 흘러가도 좋겠다는 욕심도 생기네요.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변해갑니다. 도저히 어른이 되는 날이 올 것 같지 않았던 그 어린 시절은 어느새 기억도 가물가물한 옛 추억이 되었고, 나는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다가도 거울 속 낯선 아저씨의 모습에 새삼 현실로 돌아오는 저 자신을 발견하는 요즘입니다. 사람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도 변합니다. 문화도 변하고, 유행도 바뀝니다. 많은 이들이 요즘 ‘MZ세대’ 이상하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곤 하는데, 그들 가운덴 아마도 과거 마찬가지로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X세대’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이야기를 남겼다고 하네요. 사회는 늘 변하고 있기에, 구세대의 눈에 ‘정상으로’ 보이는 신세대가 오히려 정말 ‘이상한’ 세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뀐다 해도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이 그러하고, 그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인간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또한 바뀌지 않습니다. 2025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희년도 끝나갑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희망도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한 해를 살아갈 것입니다. 주어진 새로운 일 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희년은 끝나지만 우리는 여전히 ‘희망의 순례자’로서 나의 하루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어머니의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손은 점점 말라가지만, 그 손맛은 ‘그대로’입니다. 그 손맛처럼 아들을 향한 사랑도 ‘그대로’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도 항상 ‘그대로’입니다. 희년이 아니기에 작아지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2025년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도 희년 못지않게 기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