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휴대전화 화면에서 쓸어내리면 다음 동영상이 시작됩니다. 30초 남짓한 영상에 재미가 가득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는 ‘쇼츠’의 향연입니다.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와이프’ 한 번, 손가락 한 번 움직임에 짧지만 연속되는 보상이 이어집니다. 뇌과학의 발달로 우리의 감정이 각종 신경전달물질의 전달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쉽고 빠른 방법으로 행복을 얻으려는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서사와 논리, 침묵과 숙고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단기간의 보상 체계가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모습을 봅니다. 즉각적인 결과가 없으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실망한 채 떠납니다. 더 이상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고, 기다리는 것이 지혜가 아닌 듯 보이는 세상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지만, 우리 마음은 자주 눈앞의 보상에 사로잡힙니다.
지금 모든 것을 누리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우리 시대의 문화 안에서, 저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어리석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세계를 지워 버리려는 문화는 결국 희망의 근거를 상실하고 맙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관헌의 심문 기록인 『포도청등록』에는 직산(현 충남 천안시 성환읍 와룡리) 일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누구에게서 교리를 배웠는지에 대한 진술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병인년에 수원 진영에서 순교한 윤평심입니다.
직산에 살던 윤평심은 일찍이 기도 생활과 교리를 익혀 신자들에게 교리와 기도를 가르쳤고, 자신의 집을 내주어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 신부가 머무르며 성사를 집전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특히, 그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순교를 두려움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준비하려는 마음이 깊었다고 전해집니다. “천주교를 믿으면 죽은 뒤에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곳, 곧 하늘나라(善地)에 간다.”라는 그의 말에 크게 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박해 시대 평신도 교리교사였던 하느님의 종 윤평심의 ‘손가락’은 불안과 결핍을 지우기 위해 현실을 ‘스와이프’하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 순례길의 종착지 너머, 하느님 안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가리킵니다. 그 길은 당장의 욕구를 억지로 참기만 하는 길도, 이 땅의 불의와 고통을 외면한 채 모든 노력을 미루는 길도 아닙니다. 순교자들이 품었던 희망은 오히려 오늘을 더 진지하고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는 휴대전화 안에서 순간적인 자극을 찾기보다, 영원을 향해 마음을 돌리는 작은 실천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하느님의 종 윤평심
저희 마음이 눈앞의
결과에만 매이지 않게 하시고,
하늘나라의 약속을 바라보며
오늘을 충실히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