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정오 무렵, 뜨거운 중동의 날씨에 누구도 물을 길으러 가지 않을 시간에 한 이름 모를 여인이 나타납니다. 그녀에게 신앙은 오히려 ‘거리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다가가시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만남은 한 여인의 삶뿐만 아니라 한 고을의 역사를 바꾸어 놓습니다. 그녀는 복음에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작은 인물처럼 보이지만, 만남 하나로 ‘선교사’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역사 안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 세 번째 사제인 강도영 마르코 신부님은 지금의 교회처럼 '갖춰진' 조건 속에서 사제직을 시작하지 못하셨습니다. 1800년도 후반, 가난하고 불안정한 시기에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함께 교회를 이루어 갔습니다. 신부님께 신앙 공동체란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신앙고백이 모여 이루어지는 교회였습니다.
그 신앙의 결실로 지어진 성당이 올해 130주년을 맞이한, 미리내 성지와 함께 있는 수원교구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미리내 성 요셉 성당’입니다. 개인의 헌신이 아닌,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교우들과 사제가 함께 살아낸 시간의 결정체입니다. 성당 건설에 대한 완벽한 계획이 없어도 그들은 큰 돌들을 직접 날랐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이미 자신들이 만난 주님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 속 야곱의 우물과 미리내 성지의 성 요셉 성당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의 큰 간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흐르고 있는 선교의 본질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주변에 있는 이름 모를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거십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공동체를 일으키십니다. 가진 것이 없지만 만남을 전했습니다. 미리내의 신앙 선조들은 가난 속에서도 함께 살고 믿는 삶을 증언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오늘 복음이 전하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선교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요? 전문적인 프로그램? 훌륭한 전략? 혹은 숫자? 그러나 오늘 복음과 신앙 선조들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선교는 만남이며, 그 만남이 삶으로 증언될 때 교회는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물을 길으러 갔다가 증인이 된 이름 모를 한 여인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가 강도영 신부님과 함께 성당을 세운 교우들처럼, 오늘의 우리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저 멀리 예루살렘 야곱의 우물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미리내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우리의 자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결국 머물지 않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발걸음 위에 교회는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도 그 발걸음을 더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