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수원주보 기사

남한산성 성지 ③ 한 장의 종이로 가둔 숨(백지사형)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9-09 15:43:37 조회수 : 9

남한산성 성지 성당과 토마스홀 사이에 난 길로 올라가다보면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기 위해 시행된 ‘백지사’(白紙死)를 묘사한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 끔찍한 형벌을 받는 모습이 마치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백지사’는 칼날을 몸에 대지 않고도 목숨을 앗아갔던 병인박해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형벌입니다. 상투를 풀어 뒤로 결박한 손과 함께 묶으면 자연스레 고개가 젖혀집니다. 그렇게 사지가 결박된 채 하늘을 향한 순교자의 얼굴 위로, 물을 적신 한지를 한 장씩 겹겹이 쌓습니다. 물에 젖은 한지가 한 장씩 얼굴에 붙여지면 점차 숨을 쉬기 어렵게 되고 또 종이가 마르면서 살을 조여오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숨이 막혀오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천주교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남한산성의 차가운 땅 위에서 수많은 이들이 이 소리 없는 형벌을 견뎌내며 피가 아닌 ‘숨’을 바쳐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1866년에 일어난 병인박해는 천주교 박해 중 가장 많은 순교자를 냈습니다. 전국에서 매일 수십, 수백 명의 신자가 잡혀 들어오면서 정상적인 재판이나 문초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이에 한양의 포도청과 의금부는 물론 관아의 감옥까지도 포화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많은 사람을 참수형으로 죽였지만, 정부는 집행과 사후 처리에 드는 비용으로 고심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손쉬운 방법인 ‘백지사’를 선택한 것입니다. 칼로 목을 베어 피가 낭자한 처형보다는,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도 고통속에 소리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일반 백성들에게 보여 주어 지켜보는 이들에게 극대화된 시각적 공포를 심어주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이런 사형방법이 남산산성에서 많이 집행된 것은 당시 남한산성이 군사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었기에 일반 관아보다 훨씬 엄격하고 잔인한 군법이 적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산성이라는 고립된 공간 특성상 외부의 눈을 피해 수많은 신자를 처형하기에 최적의 정소였다고 합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그들의 고귀한 숨결이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