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수원주보 기사

왜 용서해야 하나요?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9-09 15:44:34 조회수 : 10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한 번도 힘든데, 일흔일곱 번이라니요. 대단합니다. 

‘주님, 저 인간이 너무 밉습니다. 저 인간을 어떻게 좀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만약 우리의 이런 청을 다 들어주신다면, 세상에 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또,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고 그대로 다 계산하신다면,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용서’ 참으로 어렵습니다. 용서라는 말은 영어로 ‘forgive’입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말로는 ‘perdonare’입니다. 이 두 단어를 ‘for+give’, ‘per+donare’ 이렇게 전치사와 동사로 나눠 보면, 용서는 ‘내 편에 주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일’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용서를 생각하면 늘 따라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화해입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3-24).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용서하면서 살아야 하나? 왜 그래야 하나? 용서하지 않고 안 보고 살면 그만인데…’ 우리가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제가 용서할 때,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저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편에서 무엇인가를 주어야 하느님께서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을 붙잡아 목숨을 빼앗은 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원망이 없었다고 합니다. 분노와 원망이 없었기에 용서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과연 나는 누군가를 용서한 적이 있는가? 그를 위해 화해의 손을 내밀고, 또 자비를 베풀었는가? 저는 화해를 해 본 적은 있는데, 용서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봐주거나 넘어간 적은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의 은총 없이 용서는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정말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용서를 기억해 봅시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않느냐?” 그리고 명심해야 합니다.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처럼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