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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성지④ 시구문 그 참혹함의 역사에 묻힌 무명순교자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9-17 15:57:56 조회수 : 1

남한산성 순례의 여정은 성안에서 숨을 거둔 이들의 마지막 흔적을 따라 ‘시구문’이라는 가슴 아픈 이름으로 기억되는 ‘동암문’으로 이어집니다. 참혹한 고문과 처형이 자행되었던 연무관에서부터 시구문으로 향하는 길은 순례의 의미를 한층 더 깊고 숭고하게 합니다. 그 옛날 순교자들이 죽음 너머 하늘로 향했던 그 영원의 길을 지금의 우리가 묵묵히 뒤따라 걸으며 그들의 굳건한 신앙을 온전히 가슴에 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남한산성 시구문의 공식 명칭은 ‘동암문’입니다. 남한산성에는 무려 16개의 암문이 있었는데, 그중 이 문이 조그만 수레가 다닐 수 있는 문이어서 굶주림과 병마로 죽은 백성들의 시신을 성 밖으로 내다 버리던 통로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시신이 사대문을 통과할 수 없어, 이 문으로 시신을 내보냈습니다. 


이 작은 통로가 박해 시기에는 수많은 순교자의 유해가 버려지는 비극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오직 신앙을 지키겠다는 깊은 신심으로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순교자들은 연무관과 형장에서 처형된 후, 수레에 실려 이곳 시구문을 지나 성 밖 낭떠러지로 무참히 내던져졌습니다. 골짜기 여기저기에 던져진 유해들은 오래도록 수습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습니다. 그 처참한 현장에 떨어진 순교자의 피가 지금 우리 신앙의 씨앗이 되었음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습니다. 


성지 성당에서 시작해 시구문에 이르기까지 남한산성의 성곽을 따라 걷는 순례의 길은 이 땅이 품은 가장 아프고도 숭고한 순교 신앙을 되새겨 보는 여정입니다. 형장에서 처형당한 시신을 거두다 순교의 길을 택한 의로운 복자 한덕운 토마스, 숨이 막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백지사형의 희생자들…. 그리고 그들이 고난의 끝에 마주한 시구문은 죽은 이들이 버려지던 절망의 문이었지만, 그 육신은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남한산성의 돌 하나, 풀 한 포기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모든 순교의 증표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비추는 빛이며 기억해야 할 신앙의 이정표가 되었음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