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 블루》는 지중해의 깊고 푸른 바다에 매혹된 두 잠수부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리스의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부터 잠수를 겨루던 자크와 엔조는 세계적인 프리다이버가 되어 산소통 없이 오직 한 번 들이마신 숨에 의지해 누가 더 깊이 잠수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바라보는 바다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엔조에게 바다는 정복하고 기록을 세우는 곳이지만, 자크에게는 자신이 속하고 싶어 하는 세계입니다. 마지막 잠수에서 치명적인 상태에 이른 엔조는 자크에게 자신을 바다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오랜 우정과 존중 속에서 경쟁해 온 친구의 죽음 이후, 자크에게는 자신이 바다 위 세상과 바닷속 세상 가운데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자크는 다시 수면으로 돌아오는 대신 돌고래를 따라 깊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들이마신 한 번의 숨을 품은 채 말입니다.
경기도 이천 단내 마을 출신의 하느님의 종 정은 바오로는 자신의 등창을 치료해 주던 의원에게서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했습니다. 가족 가운데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그는 1846년 초, 비밀리에 순방하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 가족과 이웃들이 성사를 받게 하기도 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은 정은에게 함께 피신하자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정은 바오로는 떠나지 않고 집에 남아 자신을 찾아온 포졸들을 맞았습니다. 이미 나이가 들어 제대로 걷기조차 어려웠던 그를 포졸들은 처음에는 소에 태워 가는 듯했지만, 이내 소를 팔아 버리고 70리 길을 걷게 하여 남한산성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그는 끝내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듬해 1월 13일, 재종손 정양묵 베드로와 함께 백지사형을 받았습니다. 얼굴에 물을 뿜고 한지를 여러 겹 붙여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마지막 숨을 내어놓았습니다.
너무도 당연해서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지만, 숨이 막히는 순간 비로소 한 번의 호흡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께서 불어넣으신 숨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의 숨을 당연하게 여기듯, 우리의 생명 또한 하느님께 받은 것임을 잊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정은 바오로의 숨을 빼앗을 수 있었지만, 그가 하느님께 받은 생명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우리의 모든 삶은 하느님께 받은 생명의 은총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마지막 숨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분은 부활이요,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이십니다. 마지막 숨마저 빼앗긴 정은 바오로에게 죽음은 생명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라, 처음 그에게 숨을 불어넣으신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종 정은 바오로,
저희가 성령의 숨결 안에서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