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따로 부르시거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모인 자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천상의 것을 추구하라는 이 말씀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6-21 참조)를 생각나게 합니다. 부유한 사람은 자신이 모은 재산을 쌓아 놓기 위해 곳간을 헐고 새로 더 큰 것을 지으며, 자신에게 말합니다.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천상의 것을 추구하기에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 그들이 순교를 선택한 이유를 상상해 봅니다. 주님을 알고 난 뒤,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하게 여겼던 자신의 계급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살아봐야 별 볼 일 없는 불평등한 이 세상! 순교하면 직천당이라는데, 그냥 떠나야겠다.’ 이런 마음도 있었을까요? 한편, 순교자 가운데는 ‘지체 높은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안락함을 버리고 왜 순교를 선택했을까요? 학문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신념, 진리를 지키려는 신념 때문이었을까요?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바라고 고귀한 신념 때문에 이 세상 삶을 버리는 일이 가당치는 않아 보입니다. 우리는 가장 뻔히 드러나는 3대 거짓말 중 하나가 ‘빨리 죽고 싶다.’는 말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반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일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함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교부도 죽음의 압박 아래 “끝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은 분명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나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끝까지 견디어 구원받을 수 있도록(마태 24,9-13 참조)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