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 맞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다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정으로, 나자렛을 방문하게 되며, 그곳에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주님탄생예고 기념성당과 바로 뒤편에 자리한 성 요셉/성가정 기념성당에 이어, 정말 작지만 의미 있는 (유다교) 회당 기념경당을 방문합니다. 나자렛에서 유일했던 유다교 회당터에 세워진 경당이라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회당의 규모로 보아, 예수님 시대의 나자렛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실 나자렛은 구약성경은 물론 초기 유다교 문헌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나타나엘이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일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 하고 물었겠습니까! 작은 마을이었으니, 분명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을 찾으십니다. 예수님은 분명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포함한 고향 사람들이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듣고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마르 3,20-35 참조).
어떻게 보면, 오늘 예수님은, 공생활에 접어드시기 전, 삼십 년의 세월을 동고동락했던 고향 사람들, 어렸을 때부터 당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의 오해와 오판을 불식시켜 회개로 이끌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고향을 찾으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늘 해오신 대로,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실 정도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로 시작해서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그의 형제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로 이어지는 일련의 의문들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는 결론으로 이끕니다.
왜 못마땅하게 생각했을까? 우리 마을 출신 가운데, 저렇게 언변이 탁월하고 지혜가 출중하고 놀라운 행적까지 펼치는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까?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는 확신이 오판이었고 패착이었습니다. 쏟아내는 일련의 질문들이 오히려 잘 알고 있지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외적으로는 몰라도 내적으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니 똑같은 운명을 살았던 예언자들이 다시 언급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사제양성에 힘써오던 터에, 출신 사제들 가운데 본당에서 또는 특수 사목 분야에서 예상외로 이름을 떨치는(?) 분들 소식을 들으면서, 신학생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하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신학생 시절의 그 신부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었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사제가 된 후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신부님들의 신학생 시절 생각하면, 그저 죄송하고 고맙고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그분의 가르침과 정신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입니다. 그분의 모든 것이 내 생각과 의식과 판단에 스며들 때까지 되풀이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에 대해서도 같은 자세를 취해야 하겠습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토해내는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가 되는 일만을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꼭 그러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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