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매일 씁니다. 그리고 일정표도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점검합니다. 그래야 제가 저의 삶을 스스로 조절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짜인 틀에 맞춰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군대 시절 그리고 학창 시절이 그러했습니다. 다른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는 대로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폴 브루제’가 이런 말을 했었지요.
“용기 내서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머잖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용기가 생각대로 살게 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사는 것에 맞춰서 생각할 뿐입니다. 새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으니, 권태와 피로가 엄습하고 사는 것도 그리 재미없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삶을 강조하십니다. 이 사랑의 삶은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삶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다양한 생각이 나오게 되고 동시에 다양한 삶을 갖게 합니다. 지루한 삶이 아닌 기쁨 넘치고 활기찬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묵상하면 주님께서 왜 사랑하라고 그토록 강조하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남에게 끌려가는 삶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스스로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용기 내서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주도적인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께서는 간절히 바라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사랑의 삶은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모든 이득은 우리가 보는 것인데도 그것만으로도 크게 기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마치 모든 영광은 자녀가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영광 받는 모습만으로도 크게 기뻐하는 부모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받고 있음에도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더 주십니다. 바로 보호자 성령입니다. 이 성령은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또 그 말씀을 기억하게 도와주신다고 하십니다. 바로 주님의 사랑 안에 계속해서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호자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가장 힘센 분께서 우리 편이 되어서 이렇게 많은 사랑과 은총을 주시는데 과연 용기 내지 못할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사랑의 실천을 용기 내서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커다란 은총과 사랑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아이리스 머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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