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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6-17 조회수 : 141

 
마태오 5,43-48 
 
용서의 방법과 순서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심장이지만,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도전입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마주할 때 솟구치는 감정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불가능에 가까운 명령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오늘 강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용서에도 방법과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곧 세상 정의만큼은 올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믿음이고 그 믿음은 작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 하느님의 자녀, 그 높은 자존감에서 오는 힘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원수를 사랑하는 힘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은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분 자체가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 사랑의 첫 번째 열쇠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우리는 그와 똑같은 미움의 진흙탕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영적 신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높은 곳에 서게 됩니다.
점잖은 어른이 자기를 향해 짖는 강아지와 싸우지 않듯,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미움에 미움으로 응답하는 유치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나는 너보다 낫다’는 교만이 아니라, ‘나는 하느님의 존귀한 자녀이기에 더는 미움에 나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거룩한 자유입니다. 
 
성인 요한 괄베르토의 삶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형제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려 칼을
뽑았습니다.
그때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용서하신 성금요일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원수가 두 팔을 벌려 십자가 모양을 만들자, 요한은 ‘하느님의 자녀인 내가 어찌 주님의 날에 복수를 할 수 있는가’ 깨닫고 칼을 버렸습니다.
그는 원수를 용서함으로써 미움의 종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녀다운 자유를 선택했고, 훗날 위대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용서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깨달을 때 시작됩니다. 
 
2. 나의 의지적 응답, 작은 실천 "인사"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통해 열매 맺습니다.
믿음에 실천이 따라야 하듯,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깨달았다면 이제 그에 맞게 행동하려는 ‘의지’를 보여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무슨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냐?”(마태 5,47) 하시며 ‘인사’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말씀하셨습니다. 
 
원수 사랑의 여정은 이 작고 용기 있는 ‘인사’ 한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미운 사람을 외면하는 침묵은 미움이 자라는 토양입니다.
이때 건네는 인사는 어둠 속에 작은 촛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인사는 ‘나는 더 이상 당신을 미워하며 살지 않겠습니다’라는 나 자신을 향한 선언이자, ‘주님, 제 마음은 아직 멀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이 작은 씨앗 하나를 심겠습니다’라는 하느님께 대한 응답입니다. 
 
이에 대한 가장 극적인 실제 사례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정전’입니다.
참호 속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던 독일군과 영국군은 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 밤, 독일군 참호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럴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노래는 총성이 아닌 평화의 ‘인사’였습니다. 잠시 후 영국군이 다른 캐럴로 화답했습니다.
노래라는 인사를 주고받던 그들은, 이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몇몇 용감한 병사들이 무기 없이 참호 밖으로 나와 서로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 작은 만남은 수백 명의 병사들이 서로 악수하고, 선물을 나누고, 심지어 함께 축구 경기를 하는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짧은 정전이었지만, 이 사건은 적대감의 한가운데서도 작은 ‘인사’와 같은 인간적인 교감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입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동생을 잃은 코리 텐 붐 여사는, 전쟁 후 독일의 한 교회에서 간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가 다가와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는 바로 수용소에서 가장 잔인했던 간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순간 증오가 치밀었지만, 그녀는 주님께 기도하며 힘을 구한 뒤 그 손을 맞잡았습니다.
원수를 향해 내민 그 힘들었던 '악수'가 그녀를 과거의 지옥에서 완전히 해방시킨 치유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영웅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초대하십니다.
그 시작은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한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이니, 더는 미움에 나를 내어주지 않겠다.’ 이 마음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리고 그 결심을 아주 작은 행동으로 옮겨 보십시오.
어떤 믿음이든 행동으로 발휘되지 않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내가 사제이고 의사라는 믿음이 있는데 그 믿음이 어떻게 미사를 하고 환자를 돌보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그리고 내일,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먼저 인사해 보는 것입니다.
그 어색한 인사 한마디가 원수 사랑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는 첫걸음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사이에서 놀라운 일을 시작하게 하시는 작은 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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