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복음: 루카 11,1-1
이왕이면 더 큰 것, 더 가치있는 것을 청하십시오!
무엇인가를 청하기 좋아하고 받기를 좋아하는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희소식 한 가지를 건네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 11, 9-10)
제 개인적으로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라는 표현에 의문 부호를 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무엇이든지 다 주실 것인가요? 진짜? 확실한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손이 닳도록 빌면서 청하고 또 청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던 지난 세월은 어떡합니까? 누가 책임져 줄 것입니까? 지금이라도 보상해주실 건가요?
결국 ‘무엇을 청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건인 듯합니다.
물론 세상에서의 성공과 승승장구, 건강, 합격, 승진, 화목, 평화...이런 것들, 당연히 청해야 마땅합니다.
우선 내가 건강하고, 내 가족이 평화로워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느님도 섬기고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떄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절히 청하는 그런 요소들이 지닌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래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잠시 손에 넣는다 할지라도 손에 움켜쥔 한 줌 물과 같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불멸성, 영원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당신 이름으로 청하라 하신 것은 그런 작은 것,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영원한 대상, 보다 충만한 대상, 보다 가치있고 의미있는 대상을 추구해야 마땅합니다.
그 대상은 결국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실 영원한 생명이요, 구원입니다.
청원기도 때 늘 염두에 둬야겠습니다.
작은 것을 청할 것이 아니라 큰 것을 청해야겠습니다.
세월 흐르면 다 지나갈 별것 아닌 것을 청할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대상인 성령을 청해야겠습니다.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도록, 내 안에 머무시도록, 내 안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시도록 간절히 청하는 나를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흘러넘치도록 성령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흘러넘치도록 우리에게 오실 때면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안갯속 같았던 우리의 시야를 환하게 밝혀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과 세상만사를 제대로 볼 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꽃이 피는 시절에도 기뻐하지만, 꽃이 지는 시절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막 출고된 신차처럼 건강미 철철 넘치는 젊은 시절에도 감사하지만, 노후된 중고차 처럼 여기저기 아프고 골골할 때도 감사의 기도를 바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한 인간 존재지만 대자연의 순환주기와 생로병사를 큰마음으로 수용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활동하실 때 인생사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청원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깊이 있게 묵상하고, 그 진의(眞意)를 명확하게 파악해야만 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무작정 글자 그대로 믿고 죽기 살기로 청원 기도에만 전념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큰 실망과 좌절을 맛보았는지 모릅니다.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아들이 청하는 것이 위험하고 해로운 것, 죽음으로 가는 길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간절히 청할 것은 하느님의 성령이십니다.
선물 중의 가장 큰 선물, 은총 중에 가장 큰 은총인 성령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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