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9,7-9: 헤로데가 예수님에 대해 묻다.
오늘 복음은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당황하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9절)라고 묻는 장면을 전한다. 예수님의 활동은 제자들의 파견 선교를 통해 더욱 퍼져 나갔고, 그 결과 권력자까지도 예수님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복음은 단순히 개인의 내적 위로에 머물지 않는다. 참된 복음 선포는 세상의 가치 질서를 흔들고, 권력과 불의 앞에 질문을 던진다. 헤로데가 느낀 불안은 바로 그 증거이다. 세례자 요한을 죽였던 그는, 예수님 안에서 다시금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진리는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되고, 사랑하는 자에게는 자유가 된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41,10) 헤로데에게는 진리가 두려움으로 다가왔지만, 제자들에게는 자유와 기쁨이 되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단순한 삶으로 파견되었고, 바로 그 단순함이 복음의 진정성을 드러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중심이 오직 하느님 나라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복음이 되어야 한다. 신앙인의 삶이 기쁨과 평화로 가득할 때, 이웃은 그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은 누구인가? 무엇을 믿기에 저렇게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내가 먼저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이에게 신앙을 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신앙은 억지로 짊어지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기쁨이어야 한다. 성 바오로 6세는 회칙 “복음 선포”(Evangelii Nuntiandi)에서 강조하였다. “현대인은 스승보다도 증인을 더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승이라도 증인인 사람만을 받아들인다.”(41항) 즉,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복음으로 행복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주님의 향기를 드러낼 때, 가족과 이웃이 자연스럽게 하느님께 이끌릴 것이다.
사회 안에서: 정직, 정의, 나눔의 삶은 신앙을 증거하는 강력한 언어가 된다.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이 의무나 습관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복음은 힘을 갖고 전해질 것이다.
헤로데는 두려움 속에서 “이 사람은 누구인가?”를 물었다. 그러나 제자들과 우리는 믿음 속에서 “그분은 저의 주님이시며 저의 하느님이십니다.”(요한 20,28)라고 고백한다. 우리의 삶이 복음의 빛을 드러내어, 다른 이들이 우리를 보고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먼저 우리 자신이 복음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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