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남편과 심한 부부싸움을 한 자매가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친한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흉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집안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 아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이기적이다.’ 등등 멈추지 않고 흉을 말했습니다. 한참 동안 듣던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을 짐승이라고 생각해 봐. 그러면 기특하다?”
“원래 남편을 짐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나는 기특하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어. 무슨 말이야?”
“짐승이 화장실을 알아서 찾아가고, 또 물까지 직접 내리잖아. 또 자기 찾아 달라고 낑낑대지도 않고, 집에 알아서 찾아오잖아. 얼마나 기특하니?”
맞습니까? 사실 생각을 바꾸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자기 생각만 옳다는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세상의 관점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찾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란 힘 없는 사람들이 따르는 그렇게 도움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되면 더 큰 가치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결정적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 옷은 당시 최고급 사치품으로 그가 누리는 지위와 부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었지만, 이웃에 대한 배려는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라자로는 그 이름의 뜻이 ‘하느님께서 도우신다’임에도 불구하고, 버려져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고자 합니다. 여기에 개들이 그의 종기를 핥는 비참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라자로는 천사들의 인도로 아브라함 곁으로 가게 되었고,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가치가 역전됨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삶에서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삶에서의 선택이 중요함을 이야기하십니다.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어서, 지금 당장 회개하고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함과 안락함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특히 하느님께 받은 재물과 시간은 자기 편안함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나눔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생각을 바꿔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후회할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일상 속 어디에나, 타인과의 대화나 꿈속에도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작은 표지판들이 있다(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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