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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0-04 조회수 : 100

당연히 해야 할 말이라 했는데도 내 마음이 좋지 않다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열두 살 소년 예수가 성전에서 부모의 애를 태운 복음을

묵상합니다.

사흘 밤낮 아들을 잃었다는 공포 속에서 헤매던 마리아와 요셉. 아들을 찾았을 때 마리아의 물음에 예수님은 답하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이 아들의 말은 어머니에게 분명 아픔이었겠지만, 성모님은 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미래의 더 큰 고통, 즉 예수님께서 사흘 동안 무덤에 계실 때 다시 만날 희망을 주는 ‘예방주사’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도 옳은 말을 하고도 마음이 불편한 경험이 많습니다. 내 감정에도 집이 필요합니다.

내 감정의 둑을 쌓고 안전 가옥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집이란 내가 당연히 사랑해야 하는 분의 감정입니다.

이 진리를 스티브 잡스의 사례를 통해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잡스의 독설과 가혹한 비판은 애플의 혁신을 이끌었지만, 그의 딸 리사에게 "화장실 냄새 같다"고 말하는 등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의 전기를 보면, 잡스는 유년기의 버림받음이라는 깊은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았습니다.

오랜 동료 조애나 호프만은 "그는 사람들을 찢어발겼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자기 자신을 찢어발기는 것과 같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격렬한 비판 후 혼자 흐느껴 울거나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잡스의 ‘옳은’ 말은 그의 상처와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라는 집에 머물렀기에, 그와 그의 주변 모두에게 고통과 후회를 남겼습니다.

그의 마음은 평화롭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마음은 평화로웠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듯한 그분의 말씀은

당신의 감정이나 상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온전히 '아버지의 집'에, 즉 아버지의 뜻 안에 머물러 계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연히 사랑해야 하는 분, 즉 하느님의 감정 안에 내 감정이 머물 때, 우리는 진리를 말하면서도 평화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약의 나탄 예언자가 다윗 임금의 죄를 꾸짖었던 장면을 보십시오.

다윗의 끔찍한 죄 앞에서 나탄은 담대히 “바로 임금님이 그 사람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용기는 다윗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의로움이라는 집에 온전히 머물렀기에 가능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다윗의 분노가 아닌, 하느님의 뜻 안에 있었기에 두려움 없이 예언자직을 수행했고, 다윗을 회개로 이끌었습니다. 

 

20세기의 현대 예언자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는 살해 협박에 시달리던 그는 극심한 공포 속에서 "주님, 저는 지금 약함의 끝에 서 있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마틴 루터, 정의를 위해 일어서라.

그러면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의 마음이 ‘두려움의 집’에서 ‘주님의 집’으로

옮겨지는 순간,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평화와 용기가 솟아났습니다. 

 

우리도 세상 속에서 예언자직을 수행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내 감정을 안전한 집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려 할 때, 잠시 멈춰

**"주님, 지금 제가 하려는 이 말이 정말 주님의 뜻입니까? 제 개인적인 감정이나 미움이 섞여 있지는 않습니까?"**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질문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지혜와 키가 자라나시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더 많이 받으셨다”고

끝맺습니다.

14세기, 교회가 분열되고 교황이 아비뇽에 머물던 암흑기, 글도 모르는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는 오직 하느님의 뜻에 대한 확신 하나로 교황을 찾아가 “비겁한 남자가 되지 마시고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께서 계셔야 할 곳은 로마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인간적인 두려움의 집이 아니라, 분열된 교회를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마음, 즉 ‘아버지의 집’에 머물렀기에 그 어떤 권력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고, 결국 교황을 로마로 귀환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이뤄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 감정에도 집이 필요합니다.

나의 상처와 감정의 집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사랑해야 할 분, 즉 하느님의 감정이라는 안전 가옥에 나의 감정을 머물게 합시다.

어떤 말을 하고 행동하기 전, 잠시 멈춰 카타리나 성녀처럼 물읍시다. 

 

"주님,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이 짧은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참된 지혜와 총애를 받으며 성장해 나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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