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1,15-26: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권능, 곧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현존하고 있음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사람들은 오히려 그분을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15절)고 비난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20절).
성경에서 하느님의 손가락은 곧 성령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것은 성령의 힘으로 하신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곧 성령이시다. 그 손가락으로 돌판에 계명이 새겨졌듯,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법을 새기신다.”(In Lucam Hom. 24,1)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본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통해, 그리고 성령 안에서 역사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마 행위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친히 개입하시는 구원 사건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힘센 자가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면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와서 그를 이기면 그의 무장을 빼앗고 전리품을 나눈다.”(21-22절).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무장을 해제하시고, 우리가 사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자녀가 되도록 해주셨다. 성 이레네오 교부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강도(사탄)에게 사로잡힌 인류를 당신의 힘으로 풀어내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Adversus Haereses V,21,3)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흩어 버리는 사람이다.”(23절). 중간은 없다. 주님과 함께 모으든지, 아니면 사탄처럼 흩어 버리든지 둘 중 하나다. 따라서 신앙은 단순한 태도나 기분이 아니라, 분명한 선택이다.
예수님께서는 또 경고하신다. 더러운 영이 쫓겨 나간 집이 빈집으로 남아 있으면, 더 악한 영들이 들어와 그 집은 이전보다 더 악해진다고 하십니다(26절 참조).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성전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면, 언제든 악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성그레고리오 교황은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의 은총이 머무르지 않는 마음은 곧 악령이 거처하는 빈집이 된다.”(Hom. in Evang. 29,2) 따라서 단순히 죄를 버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자리를 성령과 말씀과 성체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마음의 집이 하느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매 순간 기도와 성사 안에서 주님의 손가락, 곧 성령의 힘을 청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고, 주님의 승리가 우리 삶 안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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