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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0-12 조회수 : 145

루카 17,11-19  

 

내가 소원을 하나만 쓸 수 있다면?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삶의 진정한 행복이 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깊이 성찰하고자 합니다.

재산이나 명예 같은 외적인 변화가 행복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주는 행복은 3개월을 넘지 못하고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이에게 부모가 행복의 전부인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과 그분이 주시는 은총으로만 참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자존감’이라고 하고, 이것이 우리 모두의 ‘기본 행복 수준’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행복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의 가치를 깨닫는

‘자존감’이 높아지는 동시에, 그것을 주시는 분에 대한 감사, 곧 ‘겸손’이 함께 커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마치 은총을 담는 그릇과 같아서 그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은총은 청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마치 김치가 우리 삶의 은총이라면 김치냉장고가 겸손입니다.

겸손이 없으면 김치가 상해서 오히려 우리 건강에 좋지 않게 됩니다.  

 

일본의 유명 여배우 사와지리 에리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은총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그녀는 13세에 연예계에 데뷔하여 빠르게 톱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모델로서, 그다음엔 TV 배우로서, 그다음엔 가수로서도 노래를 부르자마자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이른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성공은 그녀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업계에서는 그녀의 안 좋은 인성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고, 급기야 2007년 한 영화 무대인사에서

기분이 “별로!”라는 발언(일명 ‘베쯔니 사건’)을 하여 대중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이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나이 많은 영화감독과 결혼했지만, 당연히 그 관계가 오래갈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은총만 바라고 그릇은 준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병 환자를 치유해 주시지만 감사하러 온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아홉은 육신의 치유라는 기적 자체에 목적을 두었고, 당연히 자신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은총을 받기 전과 받은 후가 같아야 합니다. 똑같이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되고, 받기 전이나 후나 다 ‘감사와 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총이 독이 되어 주님께서 계속 주실 수가 없습니다.

병이 치유되고도 감사하지 않은 나머지 아홉은 영혼의 나병으로 더 교만하여 하늘나라에서 더 멀어졌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누구나 겪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어 유학을 다시 나가라고 했을 때 마음 안에서는 큰 불만이 일었습니다.

공부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제가 되어 신자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데 또다시 외국인 학생으로 짓눌리며 살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결국 몸으로는 순종한다고 로마로 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을 무렵 터키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한쪽 귀의 청력이 손상되었습니다.

결국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제야 잘 들을 수 있음에 단 한 번도 감사한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데 교회에서 다 시켜주는데도 신세 한탄만 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은총을 충분히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감사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은총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청해야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아내를 바꾸어달라고 청했다가 아내가 죽자, 사람들의 칭송을 듣고는 다시 살려달라고 청했습니다.

마지막 소원이 남자, 그는 예수님께 무엇을 청해야 할지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처지에서 감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여라.” 

 

우리에게 마지막 소원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청해야 할까요? 바로 ‘겸손’입니다.

이런 마음이 은총을 받게 합니다.

겸손은 집을 짓는 바탕과 같아서 겸손이 없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게 됩니다.  

 

이러한 지혜는 세상의 성공한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가수 비는 박진영이 자신에게 “네가 아무리 잘 돼도 저 끝에 있는 막내한테, 세트를 만드는 망치질하시는 분한테 제일 잘해야 한다.” 라고 가르쳤던 것을 기억합니다.

박진영은 비에게 성공이라는 은총을 주기 전에, 먼저 겸손이라는 그릇부터 준비시킨 것입니다.  

 

메이저리거 오타니 쇼헤이가 경기장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 삼성 이재용 회장이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 그리고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나는 미래를 알 수 없다.”라는 겸손한 자세로 장기 투자를 고집하여 노년에 더 큰 부를 이룬 것 모두, 더 큰 은총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겸손의 그릇을 키워나가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동네에 가끔 뻥튀기 장수 아저씨가 리어카를 끌고 오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분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얼마나 큰 은총을 주실 수 있는지

몰랐던 거지요.

어느 날, 그 아저씨가 동네 아이들에게 공짜로 뻥튀기를 나눠준다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공짜라니!’ 하며 그냥 맨손으로 터덜터덜 나갔지만, 다른 친구들은 저마다 커다란 바가지나

대야를 들고 달려 나왔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저렇게 욕심을 부리다니!’ 

 

그러나 잠시 후, 저는 제 작은 손바닥에 몇 개만 받았을 뿐이지만, 뻥튀기 아저씨는 친구들이 가져온 그릇마다 가득가득 뻥튀기를 채워주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평상시 내가 주님을 알려고 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더 큰 은총을 받는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한 소녀가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구해줍니다.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말입니다.

나비는 천사로 변해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소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라고 하자 귓가에 무언가 속삭이고 사라졌습니다. 

 

소녀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임종 직전, 그녀는 행복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속삭였어.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다고 말하면 평생 행복할 거예요.’ 그때부터 나는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던 거야.

사실 천사가 내 소원을 들어준 게 아니야. 누구든지 만족한 줄 알고 매사에 감사하면,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신앙 여정은 바로 이 행복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너는 내 피로 값을 치른 존귀한 존재다.”라는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줍니다.

동시에,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분 앞에서 우리는 더없이 작아지는 깊은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이 두 가지를 붙들 때, 우리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은총이 은총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겸손’을 붙들고 청하고 끝까지 키워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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