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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0-14 조회수 : 158

루카 11,37-41 

 

깨끗함이란? 생각보다 강력한 자선의 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의 위선을 꾸짖으시며 “속에 든 것을 자선으로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은 자선이 단순히 남을 돕는 행위를 넘어, 우리 영혼의 문을 열고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깨끗한 공간’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열쇠임을 알려줍니다. 

 

과연 깨끗함이란 무엇일까요?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 깨끗함이란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깨끗한 집에라야 귀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지요. 사제로서 집 축복을 다니다 보면, 집이 지저분해서 사제를 들이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하며 축복을 거부하는 신자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깨끗함이란 객관적인 상태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판단하는 ‘양심’이 있습니다.

이 양심이 “너는 죄로 가득 차 있다.

너는 더러운 집이다.”라고 판결을 내리면, 우리는 하느님이라는 가장 귀한 손님이 문을 두드리셔도 차마 그 문을 열어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아서왕 전설의 기사 랜슬롯은 성배를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나는 왕을 배신한 죄인이다.

이런 더러운 몸으로 어찌 감히 거룩한 성배를 마주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양심이 스스로를 ‘합당하지 않다’고 판결했기에, 가장 큰 은총 앞에서 스스로 문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미사 때 성체를 영하기 직전,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특히 제 안에 ‘주는 사랑’이 메말라 있음을 느낄 때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시는 주님, 저는 주님께 무엇을 드렸습니까?

아무것도 드리지 못한 제가 어찌 감히 주님을 받아 모실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받기만 하는 나’와 ‘다 주시는 주님’ 사이의 불균형이, 제 양심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입니다. 

 

이 무거운 양심의 짐을 어떻게 가볍게 할 수 있을까요?

가수 박진영 씨가 가수 비에게 했던 조언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나한테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대신에 너와 함께 일하는 스태프나 후배들에게

잘해라.

그러면 네가 나를 볼 때 빚진 마음 없이 편안하고 떳떳하게 볼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준 높은 분에게 직접 보답하기 어려울 때, 그 사랑을 다른 이들,

특히 우리보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흘려보낼 때, 우리의 양심은 비로소 평화를 얻고 그분을 떳떳하게 마주할 힘을 얻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자캐오가 바로 이 원리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기 직전, 군중을 향해 외칩니다.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제가 횡령한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자선 자체’이신 분입니다.

그런데 자선을 한 번도 행하지 않은 이기적인 내가, 어떻게 감히 ‘자선 자체’이신 분을 내 안에 모실 수 있단 말입니까? 자캐오는 자신의 ‘속에 든 것’을 이웃에게 나누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집을 마련한 것입니다. 

 

미국 금융가 조지 피바디는 명성을 얻으려는 세속적인 동기로 런던의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 사업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은 아파트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과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보면서, 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순수한 기쁨을

체험합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시작했던 나눔이, 도리어 그의 영혼을 정화시켰습니다. 

 

그는 더 이상 외로운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런던의 아버지’로 불리며 진심으로 사랑받았습니다.

그의 이기적인 행동이, 그의 양심을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도록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는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꾸준히, 매일같이 자선을 베푸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사상 가장 미움받던 부자, 존 록펠러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기계적으로 거액을 기부했지만, 마음의 평화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병원에서 수술비가 없어 죽어가는 소녀를 위해 마지못해 돈을 내주었고, 그 소녀의 감사 편지를 받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돈이 한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는 그날 이후 ‘주는 기쁨’에 눈을 떴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선 자체’이십니다.

그분을 우리 안에 깨끗하게 모시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작은 오세올라가 되어봅시다.

내가 마실 커피 한 잔 값을 아껴 더 어려운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작은 습관을 시작해봅시다.

그 작은 나눔이 우리의 양심을 씻어주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기쁘게 머무시는 가장 깨끗하고 거룩한 성전으로 우리를 빚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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