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떼란 대성전: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며 머리
오늘 우리는 라떼란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낸다. 이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4년에 세운 로마의 첫 공적 성당이며, 교황의 주교좌 성당이다. 정면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Omnium Ecclesiarum Urbis et Orbis Mater et Caput: 로마와 온 세상의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며 머리.” 이 칭호는 단순히 건물의 위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 교회 일치의 표지를 드러낸다. 우리가 이 축일을 기념하는 것은 돌로 지은 건물을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곧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임을 새롭게 자각하기 위함이다.
2. 제1독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
예언자 에제키엘은 오늘 제1독서에서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다. “그 물이 흘러내려 아라바로 가서 바다에 이르면, 그 물이 되살아나고, 그곳에 사는 모든 것이 살아난다.”(에제 47,8-9)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하느님의 생명과 은총이 온 세상에 흘러넘치는 표징이다. 죽음의 바다도 이 생명의 물을 만나면 살아난다. 성 이레네오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다. “하느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그리스도에게서 솟는 생명이다.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새 생명을 낳는 성사(聖事)의 원천이다.”(Adversus Haereses IV,33,2)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 곧 세례와 성체의 은총이 교회를 낳고, 오늘의 라떼란 대성전처럼, 세상 안에서 생명을 흘려보내는 살아 있는 성전의 샘이 된다.
3.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건물, 하느님의 성전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고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기초 외에는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1코린 3,9.11)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3,16) 즉 교회의 기초는 사람이나 제도에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자신 안에 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기초로 세워진 살아 있는 돌들(1베드 2,5)이다.
성전은 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모인 신자들의 일치된 삶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한다. “성전이란 금이나 대리석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이다. 하느님께서는 돌벽보다 사랑의 마음 안에 더 기꺼이 머무신다.”(In 1 Cor. Hom. 8,6)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전은 외적인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공동체 안에 세워진 영적 성전이다.
4. 복음: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리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를 맞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러나 그곳은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집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터로 변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분노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 2,16) 하시며 성전을 정화하신다. 그때 유다인들이 표징을 요구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리라.”(2,19) 이 말씀은 당신의 몸, 곧 그리스도 자신을 참된 성전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그분의 몸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난다. 그분의 부활로, 옛 성전은 폐지되고, 새롭고 영원한 성전이 세워졌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완전한 장소, 새로운 성전이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신비를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께서 성전을 허물고 다시 세우신 것은, 당신의 몸을 부활시키신 것이다.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다시 세워지신다.”(In Ioannem Tractatus 10,13)
5. 우리 자신: 성령의 거처가 된 성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새로운 성전을 세우셨을 때, 그 성전의 벽돌은 바로 우리 각자가 되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 몸은 하느님의 성전이다(1코린 6,19). 성 그레고리오는 말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마음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성전의 금벽도 그분의 거처가 되지 못한다.”(Hom. in Ez. II,1,3) 따라서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의 마음은 어떤 성전인가? 거기에는 하느님이 머무시는가, 아니면 장사꾼의 욕심이 자리 잡고 있는가?” 성전의 참된 정화는,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새롭게 하는 일이다. 우리 안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리고, 그분의 은총이 흘러 나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전 봉헌’의 참된 의미이다.
6. 맺음말: 살아 있는 성전으로 봉헌된 우리
라떼란 대성전 봉헌 축일은 돌로 된 건물의 기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다시 하느님께 봉헌하는 날이다. 에제키엘의 환시처럼, 우리 안에서 생명의 물이 흘러나가 세상을 새롭게 하게 하고, 바오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기초로 세워진 성전이 되며, 복음의 말씀처럼,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새로워진 성전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축일의 핵심이다.
“주님, 저희 안에 당신의 집을 세워주소서. 저희가 당신의 사랑을 머금은 성전이 되어, 세상에 생명을 흘려보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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