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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12 조회수 : 41

복음: 루카 17,11-19: 한센병 환자 열 사람의 치유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만난 열 명의 한센병 환자의 치유 이야기를 전한다. 한센병은 단순한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종교적 고립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치유는 단순히 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회복, 공동체와 화해, 하느님과의 친교 회복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환자들에게 곧바로 “깨끗하여져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14절) 하신다. 이는 율법의 절차를 따르게 하시면서 동시에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명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도중에 깨끗해졌다는 사실은, 치유가 순명의 여정 안에서 주어진 은총임을 보여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순명은 모든 기적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순간, 이미 기적은 시작된다.”(Hom. in Mt. 25,2) 
 
열 명 모두 병은 나았지만, 오직 한 사람, 곧 사마리아인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무릎 꿇고 감사드렸다. 그는 단순히 은총의 결과에 머무르지 않고, 은총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나아갔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9절) 선언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치유와 구원의 차이를 봅니다. 아홉은 육체적 회복만을 받았지만, 사마리아인은 감사의 믿음을 통해 전인적 구원에 이른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강조한다. “감사하지 않는 자는 이미 받은 은혜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 그러나 감사하는 이는 받은 은혜 위에 새로운 은혜를 더 받는다.”(Sermo 36,1) 감사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은총을 굳건히 하는 신앙의 행위다. 
 
교리서는 “감사는 교회 기도의 본질적인 차원이다. 감사하는 기도는 교회의 모든 전례와 기도 안에 스며 있다.”(2637항) 가르친다. 사실 우리의 중심 전례인 성체성사(Eucharistia)라는 단어 자체가 “감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감사의 성사적 실현이어야 한다. 또한 전례 헌장은 이렇게 선언한다. “성체성사는 모든 감사와 찬미의 원천이며, 교회의 생활과 사명의 정점이다.”(10항 참조). 즉, 감사하지 않는 신앙은 이미 본질을 잃어버린 신앙이다. 
 
아홉 사람은 치유되었지만, 기쁨을 자기 안에만 가두었다. 반면 사마리아인은 감사함으로써 공동체와 다시 연결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자리에 나아갔다. 감사하는 태도는 개인의 신앙을 성숙시키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다. 불평과 원망은 공동체를 무너뜨리지만, 감사는 공동체를 세운다.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은혜를 새롭게 하고, 불평하는 마음은 은혜를 죽인다.”(Hom. in Ps. 33,1) 따라서 감사의 영성은 단지 개인의 덕목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다. 
 
우리도 사마리아인처럼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며, 받은 은혜를 삶에서 증거하는 감사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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