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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17 조회수 : 73

상어를 아세요? 어렸을 때, 영화 ‘죠스’를 보면서 상어는 무시무시한 괴물과 같은 어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해에 있는 상어는 소형 어류나 갑각류 등을 먹고 생활하는 작은 상어라고 하더군요. 즉, 사람에게 전혀 위험하지 않은 생선입니다. 그래도 이 상어가 크면 2.4미터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상어가 20cm 정도 크기에서 성장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다 야생에서 살면 2.4미터까지 자라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요?

 

유전자 조작이 아닙니다. 약을 먹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 방법은 상어를 어렸을 때(아직 작을 때) 수조에 넣어 키우면 그 수조 크기에 맞춰 성장을 멈춘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만드셨는데 스스로 수조에 자기를 가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라는 수조, 명예라는 수조, 능력이라는 수조, 욕심과 이기심이라는 수조 등에 스스로 가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만든 수조가 아닌 남이 만든 수조에 갇히는 때도 있습니다. 남의 판단이라는 수조에 갇혀서 전혀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수조에 들어갔다면 얼른 탈출해야 합니다. 계속 그 안에 있으면 성장이 끝나고 맙니다. 많은 위험과 시련이 있는 수조 밖이지만, 주님의 보호 아래에서 계속 성장하게 됩니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의 가장 소외되고 무력한 존재를 상징합니다. 눈이 멀어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들었기 때문입니다. 들었기에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38)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볼 수 없다는 수조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눈을 뜨고 있는 군중을 예수님을 그저 ‘나자렛 출신’으로만 보고 있지만, 눈먼 이는 영적인 눈으로 그분의 참된 정체성, 즉 메시아이심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사람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습니다. ‘다른 이의 판단’의 수조에 가두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먼 이의 믿음은 이 수조에 갇히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이런 간절함과 굳은 믿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으며, 예수님께 인정받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8,42)

 

즉시 보게 되었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고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자기의 장애가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간절함과 굳은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구원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영적 수조에 절대로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은 집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지고 밖으로 나가면 행복에서 가장 멀어지는 법이다(J.G. 홀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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