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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14 조회수 : 83

세상의 모든 ‘미인’의 가장 아름다운 눈, 코, 입 등을 조합해서 하나의 얼굴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이런 시도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하는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가장 완벽한 미인’이라기보다는 다소 평범하거나 ‘평균적인’ 얼굴에 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진 개성 있고 독특한 매력들이 서로 중화되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내면의 종합은 어떨까요? 지혜, 자비, 용기, 예술적 재능, 유머 감각, 따뜻한 인품 등 내면의 모든 장점을 포함한다면 어떨까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고, 모든 이에게 사랑받으며, 흠잡을 데 없는 인격과 지성을 갖춘 존재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사람은 인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사람이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부족한 단점들이 ‘나’ 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진짜 나만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세상에 발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모습이든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모든 장점의 집합체가 아니라, 나의 고유한 장단점,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모습이 바로 하느님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끔 자기가 원하는 방식, 자기가 정해놓은 시간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실 때 실망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요한도 마찬가지로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라고 묻습니다. 오실 분은 유다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말합니다. 이 메사아의 모습을 세례자 요한은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태 3,10)라고 말하면서, 심판의 메시아 상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은 사랑의 메시아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의 성취를 나열하십니다(이사야 35장, 61장의 메시아적 표징). 사랑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왔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6)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기대했던 메시아 상과 다르다고 해서 예수님을 배척하지 않는 믿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메시아의 표징은 ‘파괴’가 아닌 ‘생명’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른다면, 이웃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곳을 낫게 하고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입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취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더 은총과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특권을 누리면서도 주님의 뜻에 반대하면 살면 안 됩니다. 철저히 주님의 뜻을 따르면서, 주님과 함께하는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다가서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는 자기 연민을 버리고, 삶을 직면하는 것이다(앙리프레데릭 아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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