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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20 조회수 : 58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묻고 있습니까?  
 
 
찬미 예수님!
제임스 애그리라는 분이 쓴 아주 흥미로운 우화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제목은 『독수리와 닭장』입니다.
어느 날 농부가 산에서 독수리 알 하나를 주워다가 자기 집 닭장에 슬쩍 넣어두었습니다.
얼마 후 알에서 새끼 독수리가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주변에 보이는 게
닭들뿐이니, 자기가 닭인 줄 알고 자랐습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흙을 파헤쳐 지렁이를 잡아먹고, 닭처럼 "꼬꼬댁"거리는 시늉을 하며 살았지요.
어느 날, 이 독수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창공을 멋지게 활공하는 거대한 새가 보였습니다.
독수리는 넋을 잃고 말했습니다.
"와, 저 새는 정말 멋지다. 나도 저렇게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자 옆에 있던 늙은 닭이 핀잔을 줍니다.
"꿈 깨라. 넌 닭이야. 닭은 저렇게 못 날아." 
 
결국 그 독수리는 평생 자기가 닭인 줄 알고 닭장 안에서 모이만 쪼다가 늙어 죽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 아닙니까? 만약 그 독수리가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나는 닭이라는데 왜 날개 길이가 2미터나 될까? 나의 발톱은 왜 이렇게 날카로울까?"
그때 누군가는 답했을 것입니다.
"너는 땅을 파라고 만든 게 아니라, 하늘을 날라고 만들어졌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지 않으면, 세상이라는 닭장이 규정한 대로 닭장 안에서만 살다가 죽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누구에게 묻고 계십니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질문을 던지는 그 대상이 곧 내가 믿는 '창조자'이거나 그로부터 파견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나 자신에게 묻고, 내 마음대로 산다면, 그것은 내가 나의 창조자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존재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창조자가 아닌 존재가 스스로 목적을 정하면,
결국 생존만을 위해 사는 짐승이 되거나, 쾌락을 좇다 당나귀가 되어버린 피노키오 꼴이 나고 맙니다. 
 
동화나 영화로 유명한 '피노키오'를 보십시오.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피노키오를 만들었지만, 피노키오는 처음에는 제멋대로 움직이며 사고만 칩니다.
그가 나무 인형의 껍질을 벗고 '진짜 소년'이 된 것은 언제입니까? 바로 창조주(제페토)가 보낸 푸른 요정에게 길을 물었을 때입니다.
"어떻게 해야 진짜 소년이 되나요?" "용감하고 정직하고 남을 위하라." 피노키오는 그것을 원했던 것이 제페토 아버지임을 깨닫고는 그를 찾아나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막연히 "하느님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만남이 아닙니다.
나를 만드신 분께 "저를 무슨 용도로 만드셨습니까?
제가 오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묻는 것, 그 질문이 바로 접속 코드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설계'의 힘은 놀랍습니다. 헝가리의 교육학자 라슬로 폴가의 사례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는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세 딸을 낳기 전부터 '체스 챔피언'으로 키우겠다고 설계했습니다.
딸들은 아버지의 설계와 믿음을 받아들였고, 실제로 세 딸 모두 세계적인 체스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인간을 완벽하게 설계할 수는 없기에 인권 침해의 논란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 아버지의 설계도 자녀의 인생을 이토록 바꾸는데, 하느님의 설계는 얼마나 완벽하겠습니까?
형제끼리 뭘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부모가 옆에 있는데.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바로 이 '질문의 영성'을 보여주십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덮어놓고
"네, 알겠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성과 현실을 바탕으로 설계자에게 되물었습니다.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불신이 아닙니다.
"당신의 설계가 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합니까?
매뉴얼을 알려주십시오"라는 적극적인 요청입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라는 구체적인 답변을 들었을 때, 비로소 마리아는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며 자신의 인생 운전대를 창조주께 넘겨드렸습니다. 
 
반면, 묻지 않고 자기 생각(Ego)대로 살았던 존재들의 슬픔을 보여주는 우화도 있습니다.
영미권 전래 동화인 『세 그루 나무의 꿈』 이야기입니다.

세 그루의 나무는 각자 꿈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보석 상자가, 둘째는 왕을 태우는 거대한 배가, 셋째는 산 꼭대기에 서 있는 높은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목수들은 그들을 베어다가 첫째는 여물통으로, 둘째는 비린내 나는 낚싯배로, 셋째는 사형틀로 만들었습니다.
나무들은 꿈이 좌절되었다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설계자의 뜻은 달랐습니다. 여물통에는 세상 가장 귀한 보석인 아기 예수님이 뉘였고,
낚싯배에는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이 타셔서 설교하셨으며, 사형틀은 온 인류의 구원을 가리키는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내 꿈보다 설계자의 뜻이 훨씬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도 처음에는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예레미야 1,5)
예레미야가 창조자를 만난 순간은, 자신의 부족한 현실을 보았을 때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그려진 하느님의 설계도를 확인했을 때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창조자가 아닌 존재가, 창조자에게 묻지도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고장 난 내비게이션을 들고 길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부로 묻지 마십시오.
이 질문은 창조자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입니다.
하느님에게 물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그 계획을 세우신 창조주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반드시 그것을 알려줄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거울을 보며 나에게 묻지 말고, 하늘을 보며 그분께 물어보십시오.
"주님, 오늘 저를 어디에 쓰시려고 깨우셨습니까?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의도한 '진짜 나'가 됩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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