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신학생으로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학교내의 신학교에 머물며 공부하고 있었을 때, 그곳 신학생들과 함께, 특히 대품 곧 부제서품과 사제서품을 앞두고 베네딕토 봉쇄 수도원으로 피정을 간 적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수사 또는 수사 신부님들과 함께 성무일도 기도를 하면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수도원 고유의 전례 전통 가운데 하나는 끝기도가 끝나고 난 다음의 엄숙한 예식입니다. 수도원의 하루 일과는 대개 저녁 8시에 마감되고 새벽 4시경 시작되는 터라, 끝기도가 끝나는 시각은 8시경입니다.
끝기도가 끝나고 나면, 수사님들은 성당을 바로 떠나지 않고, 수도원 내부로 들어가는 복도를 향해 한 줄로 섭니다. 수도원장이 출구에서 성수를 들고 있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면, 그분 머리 위로 성수를 뿌리는 예식을 성스럽게 거행합니다. 잠자리에 드는 것을 죽음으로 여기기에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예식인 것입니다: “주여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당신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 물론 이 예식 안에는 거룩한 죽음 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곧 내일 아침을 희망하는 바람도 담겨 있습니다.
끝기도에서 매번 후렴처럼 올려지는 기도가 오늘 복음 속의 시메온의 노래입니다. 시메온은, 정결례 날을 이용하여 아기를 주님께 바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온 예수님의 부모로부터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언급이 세 번에 걸쳐 되풀이되는 것으로 미루어 예언자로 여겨지는 시메온은,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현시 속에 무엇을 본 것이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구원이신 예수님을 뵈었으니, 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하는 외침의 근거입니다. 더는 바랄 것이 없으니, 떠나게 해 달라는 청원으로 들립니다. 시메온의 팔 안에서 구약성경의 마지막 신탁(神託)인 예수님이 바통을 이어받으십니다. 기나긴 예고 또는 예언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완성의 시간이 전개됩니다. 이 행복한 노인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하여 구약의 모든 예언자의 해설자 역할을 맡는 영광을 누립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역사적 과정이 이 시메온의 팔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시메온의 팔에서 이루어진 이 역사적 과정을 눈여겨보며, 기쁨의 성탄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역사가 이제는 우리의 기도와 희생을 통하여 이어지도록 힘쓸 때입니다.
오늘 하루,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이웃에게 전하는 예언자로서의 삶, 시메온처럼 팔은 아니더라도 가슴에 주님을 모시는 사는 삶으로, 이 성탄 시기를 기쁨과 보람으로 채워나갈 것을 다짐하는, 신앙인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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