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1,29-34: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1. 하느님의 어린양: 순명과 희생의 신비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가장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드러낸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증언한다. 이 한마디는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와 예언, 그리고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드러낸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묵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요한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라 부른 것은, 그분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이기셨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4,8) 그리스도는 단순히 죄를 ‘용서’하신 분이 아니라, 죄 그 자체를 없애시는 분이시다. 이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인류 전체의 죄를 없애셨고,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셨다(히브 9,26-28).
2. 어린양의 의미: 구약의 성취
‘어린양’의 표상은 구약성경 전반을 관통한다. 과월절 어린양(탈출 12장):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인류는 죄와 죽음의 종살이에서 해방된다. 매일의 희생 제사로 봉헌되던 어린양처럼(탈출 29,38-46), 그리스도는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영원한 제사를 이루셨다(히브 10,10). 고통받는 야훼의 종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12) 이사야의 예언은 예수님의 순명과 고난 속에서 완전히 실현되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희생제사의 그림자들을 하나로 모으시어, 단 한 번의 제사로 모든 제사를 완성하셨다.”(Homiliae in Ioannem 17,1) 즉, 과월절의 희생, 매일의 제사, 고난받는 종의 순명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3. 죄를 짊어지신 그리스도: 사랑의 봉헌
요한복음에서 “없애다.”는 단순히 제거한다는 뜻을 넘어, ‘짊어지다.’, ‘감당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그것을 없애셨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 신비를 이렇게 해석한다. “그분은 나의 죄를 당신의 몸에 옮기셨다. 나의 불순함을 당신의 순수함으로 삼키셨다. 그리고 나를 새롭게 창조하셨다.”(Oratio 45,22) 이 희생의 절정은 요한복음 19장에 나타난다. “그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34절) 이는 교회의 성사, 특히 세례와 성체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피와 물은 하느님의 은총이 세상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통로이며, 어린양의 죽음이 생명의 샘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4. 성령의 세례: 어린양의 선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요한 1,33)으로 소개한다. 이 말씀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에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완성된 약속입니다(요한 20,22 참조).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성령은 어린양의 피로부터 나온다. 그 피로 씻겨진 자는 다시는 죄의 종이 아니다. 그는 자유인의 영을 받는다.”(De Spiritu Sancto II,5,41) 성령은 어린양의 희생을 현재 안에 실현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이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하나로 결합된다.
5. 그리스도의 모상으로 살아가는 삶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모범을 우리에게 남기셨다. 그분을 닮는다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본받음이 아니라, 그분의 희생적 사랑과 순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한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우리에게 사랑의 완전한 법을 가르쳐 주셨다. 우리도 그분 안에서 하느님께 향하는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한다.”(S.Th. III, q.48, a.2 ad 3) ‘어린양’의 표상은 단순히 경건한 상징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형식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구원은 자기 봉헌을 통한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
6. 결론: 세상의 빛이 되신 어린양
야훼의 종이 “땅끝까지 구원이 미치게 하리라”(이사 49,6)는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을 위한 구원의 빛이 되셨다. 그리고 이제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그 빛을 비추어 세상 속에서 증언하라고 부르신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어린양은 세상에 평화를 주시는 분이다.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이는, 세상 안에서 평화를 짓는 사람으로 변화된다.”(Ecclesia de Eucharistia, 19) 우리는 이 어린양의 희생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의 죄와 어둠 속에서도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드러내는 빛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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