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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18 조회수 : 166

요한 1,29-34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신 이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게! 

 

 

찬미 예수님!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아주 놀라운 증언을 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고 말입니다. 

 

당시 요르단 강가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오직 세례자 요한만이 예수님 위에 내린 성령을

보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냥 지나가는 청년 예수, 혹은 목수 아들 예수를 보았을 뿐입니다.

왜 요한의 눈에만 보였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요한 안에 이미 성령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 태중에 있던 요한은 성령으로 가득 차 기뻐 뛰놀았지요.

내 안에 있는 것이 밖에서도 보이는 법입니다. 

 

성령이란 무엇일까요? 신학적으로 복잡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늘 아주 직관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령은 바로 ‘하느님의 피’입니다.

피는 생명이고, 사랑이며, 희생의 결정체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피를 물려받기에 부모를 알아보고, 부모의 사랑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이 ‘피의 알아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레인맨』입니다. 

 

주인공 찰리는 빚에 쪼들리는 자동차 딜러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한 자폐증 형 레이먼드를 납치해 돈을 뜯어내려 합니다. 찰리에게 형은 그저 돈줄이자 짐짝, 말도 안 통하는 고장 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 도중, 호텔에서 찰리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틀자 형 레이먼드가 발작을 일으키며 소리칩니다.

“뜨거운 물은 안 돼! 아기 찰리가 데어! 앗 뜨거, 앗 뜨거!”

찰리는 그 순간 얼어붙습니다. 어릴 적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뜨거운 물에 데지 않도록 지켜주었던 상상 속의 친구 ‘레인맨’이 바로 이 형 레이먼드였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형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기억 속에 묻혀있던 나의 수호천사였고, 나를 지켜준 핏줄이었습니다.

찰리가 형의 내면에서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피’를 발견한 순간, 그의 눈빛이 변합니다.

이제 형은 이용할 도구가 아니라, 내가 지켜줘야 할 소중한 형제가 됩니다.

형의 웅얼거림은 소음이 아니라 사랑의 언어가 됩니다. 

 

부모의 피가 내 안에 흐르고 있음을 자각해야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해 당신 아버지의 피, 곧 성령을 쏟으러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옛이야기 중에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농담을 던집니다. “오늘 대사를 보니 꼭 뚱뚱한 돼지 같소.”

그러자 무학대사는 웃으며 답합니다.

“제 눈에 임금님은 부처님처럼 보입니다.”

이성계가 의아해하자 대사가 말합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입니다.” 

 

내 안에 부처의 마음이 있으면 세상이 부처로 보이고, 내 안에 욕심이 가득하면 세상이 돼지우리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피’인 성령이 흐르면, 세상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파스카의 신비입니다.

이집트 탈출 때,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발린 집은 죽음의 천사도 건드리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주인의 피가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 그분의 피가 우리 안에 흐르면, 우리는 서로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 이마에 묻은 하느님의 피를 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인간의 사랑과 피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크라이나의 ‘옥사나 말라야’ 사례를 봅시다. 1991년 발견 당시 8살이었던 옥사나는 알코올 중독자 부모에게 버림받아 3살 때부터 개집에서 개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추운 겨울밤, 그녀를 안아준 것은 부모가 아니라 떠돌이 개들이었습니다.

그녀는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짖었고, 혀로 물을 마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시선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개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의 피(사랑)’를 받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개라고 믿는 존재가 인간의 아기를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그저 밥그릇을 두고 싸워야 할 서열 경쟁자로만 봅니다.

인간 본성의 피, 인간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타인에게서 존엄함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피인 성령을 수혈받지 못하면, 우리 눈에 세상 사람들은 그저 나를 밟고 올라서려는 경쟁자나 귀찮은 존재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모든 인간, 모든 피조물을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의 피를 받은 이들은 인간은 물론이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구겨진 지폐도 돈이듯, 죄로 구겨진 인간도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을 가장 절절하게 보여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린 ‘사무라이가 되고 싶었던 천민 아이’ 이야기입니다.

어느 천민 아이가 사무라이가 되기 위해 영주의 성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의 괴롭힘과 고된 훈련을 견딜 수 없어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그 화려한 성은 감옥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늙은 시종이 아이를 붙잡고 충격적인 비밀을 말해줍니다. 

 

“이 성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네 어머니가 너를 사무라이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이 성의 기둥 속에 묻히는 ‘인주(人柱)’가 되셨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아이의 눈에 비친 성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차가운 기둥과 벽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뼈요, 어머니의 살이었습니다. 아이는 그 기둥을 부여잡고 통곡합니다.

그리고 결심합니다.

어머니의 피가 서린 이곳을 버리고 도망칠 수 없다고.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입니다.

아이는 자신을 괴롭히던 귀족 아이들까지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내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피가 묻은 성 안에 사는 모든 존재를 품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 와서 십자가를 볼 때, 이웃을 볼 때, 그저 나무 조각이나 남으로 보인다면 아직 내 안에 성령의 감각이 무딘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을 보려는 우리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욕망에 의해 성령을 많이도 잃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간절히 보려고 하는 이들에게 내리십니다.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님이 씻지 않은 노숙자를 껴안았을 때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셨던 것,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냄새나는 거지에게서 예수님의 목마름을 보셨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분들이 끊임없이 기도하며 가난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의 피’를 발견하려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더 사랑하려고 노력할 때 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데, 그때 오시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으로만 성령을 볼 수 있습니다. 피로만 피를 볼 수 있습니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에게 가족을 잃은 고정원 씨가 그 살인마를 양아들로 삼으려 했던 그 피눈물 나는 노력은, 그 괴물 같은 인간 안에서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보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내 안에 하느님의 피, 성령이 흐를 때만 가능한 시선입니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고 기도했기에 성령이 주어졌고, 그래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하느님의 눈’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단순한 생물학적 인간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피, 곧 성령을 받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개는 꽃이 예쁜 줄 모릅니다. 개 안에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본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성인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죄 안에는 거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하느님의 피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성령의 안약을 넣고 세상을 보십시오.

나를 괴롭히는 이웃 안에서, 부족해 보이는 가족 안에서 상처 입은 나의 ‘레인맨’을 발견하십시오.

그들 안에 묻어있는 하느님의 땀과 피를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나는 보았다.

저 사람 안에 하느님의 피가 묻어있음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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