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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8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18 조회수 : 83

복음: 요한 1,29-34 

 

고작 어린양이라니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너무나 두렵고 경외로운 이름, 절대 신성시되는 이름, 그래서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름이 하느님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공개적으로 외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요한 1,29) 

 

변방 나자렛 출신, 목수 요셉의 아들을 향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외쳤으니, 유다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분노와 혼돈이 일어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한마디로 목숨을 건 증언이자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이 간략한 증언 한 마디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운명에 대해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놀랍지 않습니까? 

 

광대무변한 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느님, 그분으로부터 이 세상 구원이라는 엄청난 사명을 부여받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세례자 요한은 그분을 향한 표지이자 상징으로

‘어린양’이란 호칭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음 사가들의 상징조차 사자, 독수리, 황소 등으로 표상되는데,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기 위해 붙인 칭호가, 공룡이나 호랑이가 아니라, 고작 어린양이라니요! 

 

양은 수많은 동물들 가운데 대표적인 초식동물입니다.

힘없고 나약한 동물, 그래서 틈만 나면 맹수들에게 쉽사리 잡혀 먹히는 동물의 대명사입니다.

그런 양들 가운데서도 갓 태어난 어린 양에다 예수님을 갖다 붙이니, 참으로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생각하니,

어린양보다 더 잘 들어맞는 호칭은 다시 또 없는 듯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활 여정을 쭉 따라 가보니, 단 한마디로 표현해서, 더도 덜도 말고, 딱!

어린양의 삶을 철저히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생에 걸쳐 철저하게도 고수하셨던 기본 노선은 비폭력 평화주의였습니다. 

 

한 마리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모두를 향해 외치고 계십니다.

올라서지 말고 내려서라고, 움켜쥐지 말고 손을 펴라고, 이기려고 기를 쓰지 말고 한번 져보라고,

살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한번 죽어 보라고...완전히 죽는 순간, 새 하늘 새 땅이 열리고, 참삶의 길이 시작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크게 환대하기는커녕 철저하게 냉대하고 무시했습니다.

냉대와 무시를 넘어 올가미를 씌우려고 모의하고 죽이려고 몰아세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철저하게도 무지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 땅에 내려오신 하느님을 배척하는 일생일대 가장 큰 반역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유난히 돋보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그의 태도는 다른 사람들과 천지차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멋지게 잘 닦은 선구자였던 그는 이제나저제나 노심초사하며 그분을 기다렸습니다. 

 

그의 시선을 오로지 자기 뒤에 오실 만물의 주인이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깨어 기도하면서 그분께서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할 순간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평생을 기다려왔던 그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그분임을 확신한 세례자 요한의 가슴은 기쁨과 설렘으로 벅차올랐습니다.

이제 평생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에 더 이상 여한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세례자 요한은 천둥 같은 목소리로 크게 외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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