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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26 조회수 : 221

당신은 밭의 ‘알바생’입니까, 아니면 ‘상속자’입니까?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수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영적 신분을 확인하게 됩니다.

밭에 수확할 곡식이 썩어가고 있는데,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내 알 바 아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급을 받는 ‘알바생’입니다.

하지만 썩어가는 곡식을 보며 가슴을 치고, 밤을 새워서라도 거두려 하는 사람은 밭의 ‘주인’이자 ‘상속자’입니다. 

성소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아닙니다.

오늘 강론을 통해 우리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밭(교회)에 서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1. 파리 대학생들을 향한 하비에르의 절규

밭의 주인이 갖는 마음, 그 첫 번째는 ‘안타까움’입니다.

동방 선교의 개척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인도와 일본에서 수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지 못해

영적으로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그 참혹한 영적 기근 앞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고국에 있는 파리 대학의 후배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파리 대학으로 달려가 미친 사람처럼 외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게으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영혼이 지옥으로 가는지 아십니까!’ 제발 학문보다 영혼을 구하는 일에 투신하십시오!”

그는 밭의 곡식이 썩어가는 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주인의 마음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를 보십시오.

사제가 부족해 미사가 줄어들고, 신자들이 영성 지도를 받지 못해 이단으로 빠지거나 냉담하는 현실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어쩔 수 없지, 시대가 그런 걸”

이라며 혀만 차고 있다면, 우리는 하비에르 성인의 외침을 외면하는 게으른 구경꾼들에 불과합니다. 

 

2.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 스플랑크니조마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이 여기셨다’고 번역된 그리스어 원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Splanchnizomai)’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불쌍하네” 정도의 감정이 아닙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 ‘내장이 뒤틀리는 아픔’을 뜻합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주님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만약 우리 성당에 보좌 신부님이 한 분 더 계신다면 어떨까요? 주임 신부 혼자서는 도저히 찾아가지 못하는 구역의 아픈 신자들, 몇 년째 성당을 나오지 않는 냉담 교우들의 집을 수십, 수백 번 더 두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죽어가던 수많은 영혼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 가능성을 알면서도 일꾼을 청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끊어지는 창자의 고통을 남의 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3. 굶어 죽으면서 씨앗을 지킨 바빌로프의 과학자들 그렇다면 진짜 상속자는 어떤 모습일까요?

여기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보다 미래의 밭을 지키는 진정한 주인들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러시아의 레닌그라드를 900일 동안 포위했을 때의 실화입니다.

도시는 완전히 고립되었고, 사람들은 배고픔에 미쳐 가죽 구두를 삶아 먹고 인육까지 먹는

생지옥이 펼쳐졌습니다. 

이곳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씨앗 은행인 ‘바빌로프 연구소’가 있었습니다.

이곳의 과학자들은 쌀, 밀, 감자 등 수 톤의 곡물 씨앗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장 그 씨앗을 털어 먹으면 살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았고, 전시 상황이니 비난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씨앗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유산(상속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쥐들이 씨앗을 먹지 못하게 밤새 교대로 지키며, 정작 자신들은 곡물 자루에 머리를 기댄 채 굶어 죽어갔습니다.

죽어가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씨앗을 먹을 수 없다.

이것은 미래의 러시아와 인류가 먹어야 할 밭이다.”

결국 아홉 명의 식물학자가 쌀자루를 베개 삼아 아사(餓死)했습니다. 

 

삯꾼은 배고프면 밭의 곡식을 털어 먹고 도망가지만, 상속자는 밭을 지키기 위해 밭고랑 위에서 죽습니다.

우리에게 사제 성소는 바로 이 ‘씨앗’입니다.

우리 시대의 편안함을 위해 소비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교회를 위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종자(種子)입니다. 

 

4. 루(Lu) 마을 어머니들의 기적

하느님의 밭을 사랑하는 상속자들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제가 많이 나오기를 ‘행동’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1881년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 ‘루(Lu)’의 어머니들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마을에 사제가 없어 성사를 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알바생’ 마인드였다면 “교구청은 뭐하나, 빨리 신부 안 보내주고”라고 불평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어머니들은 ‘주인’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매주 화요일 성체 조배를 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희 아들 중 한 명을 사제로 불러주소서. 그 아이를 온전히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남의 집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을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인구 3천 명도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무려 323명의 사제와 수도자가 탄생했습니다.

밭이 메말랐을 때 남 탓을 하는 건 구경꾼이고, 내 자식을 물길로 내어놓는 사람은 주인입니다. 

 

5. 맘마 마르게리타의 쓴소리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제가 많이 나오길 기도하는 것을 넘어, ‘좋은 사제’가 나오길 기도해야 합니다.

성 요한 보스코가 신학교에 들어갈 때, 그의 집안은 몹시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맘마 마르게리타는 아들에게 세속적인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신학교로 떠나는 아들에게 무섭도록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요한아, 네가 만약 사제가 되어 부자가 된다면, 나는 결코 네 집 문턱을 밟지 않겠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으니 가난하게 죽을 것이다.”

그녀는 아들이라는 ‘일꾼’이 주인의 밭(교회)에서 자기 잇속을 챙기는 ‘삯꾼’이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오직 주인을 위해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하는 참된 일꾼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성소를 대하는 부모의 진정한 ‘주인 의식’입니다. 

 

결론: 끝까지 지키는 자가 상속받는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훗날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섰을 때, 하느님께서는 누가 당신 나라의 상속자인지 가려내실

것입니다.

그때 쓰실 기준은 하나입니다.

“누가 끝까지 내 밭을 지켰느냐?” 

 

1527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군대가 로마를 침공했을 때의 일입니다(Sacco di Roma).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지키던 수많은 용병(알바생)들은 적군의 압도적인 병력을 보자마자 살길을 찾아 모두 도망쳤습니다.

돈을 받고 일하는 그들에게 목숨을 걸 이유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89명의 스위스 근위대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교황을 피신시키기 위해 베드로 대성전

계단에서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다 전멸했습니다.

그들의 맹세는 계약서가 아니라 ‘신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바티칸을 스위스 근위대가 지키는 이유는, 그들이 ‘돈’이 아니라 ‘주인(교황)’을 위해 죽을 수 있음을 역사로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의 성소가 줄어드는 위기의 때입니다. 도망치는 용병이 되지 마십시오.

텅 빈 밭을 지키며 씨앗을 심는 바빌로프의 과학자가 되십시오.

내 자녀를 봉헌하는 루 마을의 어머니가 되십시오.

그렇게 밭을 지키는 여러분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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