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이작 뉴턴, 토머스 에디슨 등 시대를 대표하는 혁신가 2,000명의 경력을 분석했습니다. 대부분 이들이 성공했기에 많은 결과물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많이 만들었기에 성공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피카소는 약 2만 점의 작품을 남겼고, 아인슈타인은 300편에 가까운 논문을 썼으며, 바흐는 1천 곡 이상을 작곡했습니다. 또 에디슨은 1천 건이 넘는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이들 모두 최고의 질을 이뤄낸 사람인 동시에 가장 많은 양을 만들어 낸 사람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모두 훌륭했을까요? 300편의 논문 중 상당수는 인용조차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흐의 작품 1천여 곡 가운데 오늘날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작품은 30~50곡에 불과합니다. 에디슨의 1천 건 이상의 특허 중에서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 것은 고작 10~20건입니다.
어떤 결과를 낼 것인지 염두에 두지 않고 무조건 계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실패했다고, 또 상처받았다고 포기한다는 것이 옳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일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면서 스스로 하느님의 일 하는 것을 멈춰 버리는 사람을 봅니다. 자기 안에서 더 이상 하느님께서 활동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행동하고 어떻게든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 노력 끝에 영원한 생명이라는 진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이 비유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당시의 농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밭을 먼저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씨를 먼저 뿌리고 나서 밭을 갈아엎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씨앗이 길가,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지는 것은 농부의 실수가 아니라 당시의 일반적인 파종 모습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씨앗을 받아들이는 땅의 상태입니다. 즉, 좋은 땅에서만이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좋은 땅은 처음부터 결정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굳은 땅을 갈아엎고, 퇴비 등의 유기물을 넣는 등, 좋은 땅으로 만드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길가, 돌밭, 가시덤불 등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땅으로 고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포기하고 좌절하며 멈춰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유혹과 박해를 뚫고 인내하는 사람만이 기적적인 결실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마르 4,20)
이 어떤 이가 바로 우리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은 살아온 날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순 없지만,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난 믿고 있다(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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