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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31 조회수 : 80

향심기도가 겸손의 표징인 이유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 속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제자들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들입니다. 
갑작스러운 돌풍이 불어 닥쳤을 때, 그들은 처음에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도 본능적으로 돛을 내리고, 노를 저으며, 물을 퍼냈을 것입니다.
자신의 근육과 경험, 그리고 '내 힘'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려 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인간의 뿌리 깊은 '교만'을 봅니다. 
교만이란 단순히 잘난 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파도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착각, 주님 없이도 내 기술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자기 확신, 이것이 바로 영적인 교만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파도는 더 거세졌고, 배에는 물이 가득 찼으며, 그들은 결국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두려움은 '상황'이 아니라 '시선'에서 옵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가 내 감정을 결정합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 하권 6장에는 이 진리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 예언자를 잡으려고 성읍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엘리사의 사환은 성 밖을 가득 메운 적군과 병거를 보고 공포에 질려 소리칩니다.
"아아,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 죽었습니다!" 
 
사환의 눈에는 '적군'이라는 절망적인 상황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태평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 편이 저들보다 더 많다."
그리고 엘리사가 기도하자 사환의 눈이 열립니다. 그러자 그는 보게 됩니다. 
아람 군대보다 훨씬 더 크고 많은 '불말과 불 병거'가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는 광경을 말입니다. 상황은 변한 게 없습니다.
적군은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시선'이 바뀌어 하느님의 군대를 보게 되자, 죽음의 공포는 순식간에 든든한 안도감으로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하늘의 군대를 보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노력일까요? 
정답은 '둘 다의 합작품'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 배 안에 함께 계셔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은총'입니다. 
하지만 은총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신 그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그분을 깨우며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은
제자들의 '몫'입니다.
신앙생활을 항해에 비유할 때, 돛단배의 원리가 이를 아주 잘 설명해 줍니다. 
 
바다 위에서 배가 나아가게 하는 동력은 전적으로 '바람'입니다. 
인간이 입으로 불어서 거대한 배를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이 바람이 바로 은총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바람이 불어도, 사공이 돛을 올리고 키를 잡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배는 제자리에서 맴돌거나 표류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이 다 해주실 거야, 알아서 해주시겠지"라고 말하며 가만히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돛을 내리고 바람만 기다리는 '게으름'입니다.
은총의 바람은 지금도 불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 돛이 올라가 있느냐입니다. 
 
우리가 돛을 올리는 가장 구체적인 노력,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특히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향심기도'와 '화살기도'입니다. 
 
예리코의 맹인 바르티매오를 떠올려 보십시오(마르코 10장).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그가 외치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은 "조용히 해!"라며 그를 억압하고 꾸짖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소음이자, 우리 내면의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바르티매오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상황을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굴하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외침이 바로 동방 정교회의 오랜 전통인 '예수 기도(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입니다. 
두려움의 파도가 덮칠 때, 복잡한 묵상 대신 바르티매오처럼 주님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십시오. 
그 이름이 나의 시선을 파도에서 예수님께로 강제로 돌려놓습니다. 
 
19세기 러시아의 영성 고전 『순례자의 길』(The Way of a Pilgrim)에는 이 기도의 신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인공 순례자는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라는 성경 말씀에 꽂혀 방법을 찾아 헤맵니다.
영적 스승인 스타레츠는 그에게 '예수 기도'를 하루에 3천 번, 나중에는 6천 번, 1만 2천 번 바치라고 시킵니다. 
처음에는 입술이 아프고 혀가 굳는 고통스러운 육체적 노력이었습니다.
숫자를 채우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계속 주님을 부르며 바라보자,
어느 순간 기도가 입술에서 마음으로 내려가, 심장이 뛸 때마다 저절로 기도가 흘러나오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노력'으로 시작한 기도가 그를 '걸어 다니는 기도 그 자체'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본성이 되는 과정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은총이 없으면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력이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제자들은 파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믿는 교만을 내려놓고, 주님을 깨우는 겸손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폭풍우가 몰아칩니까? 
내가 쥐고 있던 노를 놓으십시오.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시선을 거두십시오. 
그리고 바르티매오처럼, 순례자처럼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를 포기하고 그분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그 순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거센 파도보다, 나를 감싸고 있는 주님의 불 병거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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